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5. 9. 05:52

해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십 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3절). 사래는 자신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몸종 하갈을 대리모로 삼아 남편에게 아들을 안겨 주기로 계획합니다(1-2절). 하갈은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얻은 종이었을 것입니다. 사래로서는 대단한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래의 이 결정을 불신앙의 행위로 함부로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래로서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래는 하갈에게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허락합니다. 개역개정에 “첩”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새번역처럼 “아내”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사래는 하갈을 단순히 씨받이로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사래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를 봅니다. 얼마 후, 사래의 기대대로 하갈이 임신을 합니다(4절). 

 

아이가 들어선 후, 하갈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몸종으로 살던 사람이 주인의 아내가 되고 게다가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었으니,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래는 통큰 결단으로 하갈에게 아내의 지위를 주고 뒤로 물러났지만, 임신한 하갈의 입지가 점점 확장 되자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고, 사래는 아브람에게 그 문제를 해결 하도록 요청합니다(5절). 자신은 아내의 자리를 양보했어도 아브람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 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알아서 처리하도록 허락했고, 사래는 하갈을 드러내 놓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하갈은 집을 뛰쳐 나갑니다(6절).

 

헤브론에서 이집트로 가는 길 중간에서 하갈은 멈춥니다. 그곳은 사막이었습니다. 정처 없이 사래의 집을 나왔지만 하갈은 미혼모의 신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사막 중간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는 “어찌할까?” 생각하며 머물러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방문합니다(7절). 천사는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8절)고 물으십니다. 하갈은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아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하갈에게,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 참고 살라고 하시면서(9절), 그의 자손이 크게 불어날 것이고 강인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 하십니다(10-12절). 천사는,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그분을 “보시는 하나님”(13절)이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지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던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14절)라고 짓습니다. “나를 보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 만남 이후에 하갈은 사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간 하갈의 태도는 과거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의 뒷배임을 알기에 웬만한 일은 견디고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래는 하갈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주인을 깔보지도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겸손히 고개 숙여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낳고 천사가 말한 대로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아브람의 나이 86세 때의 일입니다(15-16절).

 

묵상: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의 집에서 주인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다신교인 이집트의 종교적 전통에 따라 하갈은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과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믿어 왔던 자신의 신을 따로 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몸종으로 살아야 했던 하갈로서는 사래의 제안을 받고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사래와 동등한 아내가 되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면 자신도 그 땅에 정착하고 번성할 수 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젊고 아브람은 늙었지만, 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낳는다면 인생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바램대로 얼마 후에 그의 태중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하갈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커져가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 자신도 모르게 언행을 달라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래로부터 혹독한 학대를 받아야 했고, 결국 견딜 수 없어서 가출을 결행합니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인생의 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자신과는 상관 없다고 여겼던 아브람과 사래의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을 보셨고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를 책임 지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 만남은 하갈의 인생 궤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보시고 우리의 고민도 보시고 우리의 죄악도 보십니다. 또한 우리의 하나님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찬양도 들으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모든 말도 들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