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의 나라(7)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8. 06:04

하나님의 나라(7)

 

종말은 가장 충실한 의미에서 영원이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서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다.(88)

 

그대는 위의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오? 종말은 영원이며,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라고 말이오. 혹시 이런 말이 신학자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오?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오. 내가 아는 데까지 한번 설명해보리다.

 

1) 영원은 유한의 반대말이라 할 수 있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종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태양도 종말에 이르지 못하오. 그러니 영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요.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영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종말을 지배하기 때문이라오. 거꾸로 종말을 다스리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오.

 

사실 우리가 영원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을 실증적으로 경험하는 건 불가능하오. 시간의 무한한 연장을 영원이라고 해도 되겠소? 그렇지 않소. 시간을 아무리 연장해도 그것은 유한한 거요. 영원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지금의 세상이 끝나고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세상이 와야만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낼 거요. 이런 점에서 영원은 곧 하나님과의 실질적 만남이라고 해도 좋소.

 

2) 위 글에서 판넨베르크는 종말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라고 했소. 하나님이 종말론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라오. 이것은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을 터이니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외다.

 

다만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보충하겠소. 하나님이 종말론적으로 존재한다면 지금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소. 종말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소. 하나님 나라도 이미 시작했소. 위에서 언급한 영원도 이미 시작한 거고, 미래도 이미 여기에 당도해 있다오. 다만 그것이 은폐의 방식이기에 우리가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거요. 이렇게 말하면 좀더 리얼하게 느낄 수 있을 거요. 나에게 언제일지 모르나 곧 닥치게 될 죽음이 이미 지금 여기 내 삶에 들어와 있다고 말이오. 마치 암세포가 이미 우리 몸 안에 숨어서 죽음의 터널을 파고 있듯이 말이오. 비유가 좀 불편하겠구려. 잘못된 비유요. 우리에게 종말은 생명의 완성인데, 어찌 암세포로 비유할 수 있으리오. 이렇게 바꾸리다. 사형수 자신은 모르는 사이에 대통령이 특별 사면령을 내린 거와 같소.(2010년 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