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7장: 지혜를 연인 삼아

새벽지기1 2024. 1. 12. 07:09

해설:

1절부터 5절까지에서 화자는 지혜를 누이처럼, 친구처럼 여기고 친밀한 사귐을 나누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그 지혜가 음행하는 여자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 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여성형 명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인격입니다. 따라서 “너는 내 누이” 혹은 “너는 내 친구”라고 부르라는 말(4절)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연인 삼아 친밀한 사귐을 나누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화자는, 지혜를 가까이 두지 않음으로 인해 한 청년이 음란한 여인에게 속절 없이 유혹 당하는 광경을 목도 했노라고 말합니다(6-7절). 그 청년을 유혹하는 음란한 여인도 문제이지만, 그 청년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음란한 여인이 있는 곳에서 서성 거렸기 때문입니다(8-9절). 부정한 성적 쾌락을 향한 욕망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합니다. 여인은, 화목제를 드리고 받아 온 고기가 집에 있으며 쾌락을 즐길 만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청년을 유혹 합니다. 남편은 오래도록 집을 비울 것이라고 덧붙입니다(10-20절). 청년은 그 여인을 따라 갑니다. 화자가 볼 때 그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고 그물에 걸린 새와 같았습니다(21-23절).

 

이렇게 목격담을 말한 후에 화자는 그런 유혹을 받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여인의 집은 쾌락의 향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안방”(개역개정 “사망의 방”)이기 때문입니다(24-27절).

 

묵상:

5장과 6장에 이어 7장에서도 음란한 여인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음란한 여인은 실제이기도 하고 비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생활에서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패망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본다면, 음란한 여인은 지혜를 떠나 자신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를 누이처럼 여기고 사랑하면 어리석은 길에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화자는 죄에 대해 두 가지의 중요한 통찰을 보여 줍니다. 첫째, 우리가 죄악을 행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우리 내면에 있는, 죄를 향한 욕망 때문입니다. 화자가 본 그 청년이 음란한 여인의 집 근처에서 서성대지 않았다면 유혹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정한 욕망은 구실을 찾아 음란한 여인의 동네에서 서성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네 마음이 그 여자가 가는 길로 기울지 않게 하라”(25절)고 말합니다. 둘째, 죄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안겨 줄 것처럼 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환멸감과 낭패감 그리고 죽음의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쾌락을 찾아 음란한 여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의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은 드러내 놓고 죄악을 범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죄 된 욕망은 은밀하게 부정한 만족을 탐합니다. 유혹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자신을 흔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유혹을 빌미로 은밀한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댄 것처럼 말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창 3:12). 죄는 인간을 가장 비겁하고 비열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