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이 작품들에서 렘브란트는 상반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십자가에 달리심〉에선 빵떡 모자를 쓰고 십자가를 올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내리심〉에선 온기를 잃어버린 싸늘한 그리스도를 두 팔로 안는 슬픔에 잠긴 사람으로 형용되고 있다.”
서성록 저(著) 《렘브란트의 거룩한 상사력》(예영커뮤니케이션, 40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신앙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그 작품들에 자신을 등장시켰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에서는 로마 병정들과 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죄인의 모습으로,
‘빌라도의 법정’ ‘십자가에서 내리심’ ‘순교자 스테판’에서는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넣었고,
‘돌아온 탕자’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탕자로 그렸습니다.
그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도 공범”이라며 고개 숙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라는 제목의 흑인 영가의 가사와 같이 내가 거기 있었던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소리치는 군중의 요청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예수님이 죄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진실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내어 준 뒤 손을 씻었습니다.
자신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고, 나는 책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빌라도는 권력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로와 보이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그 무엇을 가리켜 ‘우상’이라고 합니다. 나의 우상은 무엇인가 부끄럽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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