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레미야서 9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

새벽지기1 2021. 10. 12. 07:06

해설:

예레미야는 유다의 미래를 상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린 까닭에 눈물샘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는 홀로 광야에 나가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1-2절). 예레미야가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의 타락상을 고발하십니다(3-6절).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그들에게서 진실과 정직과 정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금속을 불로 제련하는 것처럼 그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7-9절). 

 

예레미야는 심판의 날을 상상하며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10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아 황량하게 될 것임을 확인하십니다(11절). 그러자 예레미야는 왜 유다가 그렇게 심판 받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12절).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따른 것이 그 이유라고 답하십니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방 민족 가운데 흩어져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3-16절). 이제 할 일은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들이는 것 뿐입니다. 참혹한 재앙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7-22절). 

 

주님께서는 지혜가 많다고, 힘이 세다고 혹은 재산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실로 자랑할 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23-24절). 바로 그것이 율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율법을 따라 태어난지 8일 만에 아기의 몸에 할례를 행하는 이유는 율법의 정신을 따라 살도록 양육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몸에 받은 할례만을 자랑했지 그 정신은 무시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율법의 정신(긍휼, 공평, 공의)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25-26절).

 

묵상: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앎은 곧 그 사람의 삶이 됩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사람은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귀중한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밝히십니다. ‘진실'(3절, 5절), ‘긍휼’, ‘공평’, ‘공의'(24절)이 그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배워 알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순종 하라는 말은 그런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행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실력은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산의 분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샘이 마르도록 운 것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가치들을 외면하고 진실 대신에 거짓을, 긍휼 대신에 완악함을, 공평과 공의 대신에 불의와 불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심해져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현실 지옥’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 나의 말과 행실을 통해 그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가? 매일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방향과 일치하는가? 주님의 눈길이 닿는 곳에 내 눈길이 향하고, 그분의 눈물 있는 곳에 내 눈물이 더해지고 있는가? 유다 백성의 불행한 미래를 내다 보며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었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구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