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세월

새벽지기1 2020. 1. 16. 06:41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세월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2018년 섣달 달력 마지막 한 장, 그것도 단 하루 열두 장의 선물을 다 썼다.

어김없이 또 한해가 자신의 나이만큼의 속도로 달려왔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의 선물,

2019년의 새로운 열두 장의 기적의 선물을 안아 본다.

그러나 새해는 달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모신 새 마음으로부터 비롯되

사랑하는 이의 눈빛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중년의 세월의 중압감이 더 많은 책임감과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는 습관에 길들여지느라 인생의 반을 보내고

길들여진 습관에 묶여서 나머지 반을 보낸다.

내가 베푼 은혜보다 받은 은혜가 더 많고,

내가 지고 온 짐보다 남에게 떠넘긴 짐이 더 많다.

내 기도에서 회개가 반 이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너무도 분명한 교훈은

 “더 사랑하는 것보다 더 성공하는 길은 없다”는 것과

“더 미워하는 것보다 더 실패하는 길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나눔과 섬김과 배려함으로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

기다린다는 것은 인내의 또 다른 이름이며 신앙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을 쥐고 계신 분,

우리를 당신 마음에 담고 계신 주님께 가까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기보다는 관계를 겪어내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그것은 끝없이 내 안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은 마음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망의 가지를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잘라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욕망의 끝은 절망이고 나의 포기의 끝은 소망임을 알고

오로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야겠다.

희망은 희망을 먹고 자라지 않고 절망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희망이란 절망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이고,

절망을 보지 못하고는 볼 수 없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직도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내 자신인 경우가 많다.

내가 온전하지도 완전하지 못하여 허술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리는 피차 용서 받고 용서해야 할 일이

내 삶의 주제가 되어도 좋을 만큼 아픔과 상처가 많은 인생이다.

사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누군가를 끝없이 벼랑으로 몰아간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이후로도 나는 부족하나마 늘 글을 쓰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다.

모든 것을 은총의 선물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신앙 안에서

절망 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더 자주 선택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 것이다.


그동안도 많은 사람들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배우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나에게 준 웃음, 칭찬, 격려, 그리고 눈물, 비난, 충고가

모두 삶의 양식이 되고 나의 성숙에 보탬이 되었음을 새롭게 깨달아본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있다는 것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어진 순간순간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살 것이다.

좀 더 겸손한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삶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나를 객관화시킬 것이다.

생이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원치 않는 실수와 오해로

상처와 아픔을 주고받는 가시 같은 고슴도치 인생,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참회와 용서임을 날마다 새롭게 각인하며 살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원치 않는 사별과 이별에서 오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통해

궁극적인 소망과 위로를 배우며 나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소풍 기간 동안

아름다운 여행을 위해 또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고백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고백처럼 나 또한 주께 드릴 마지막 언어를 삶으로
빚으며 살리라.


이 세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가장 오랜 나이를 머금고 있는 세월,

태곳적 오랜 역사를 머금은 세월을 누구라도 비껴간 자 없으며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도 없다.

자신의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이 막 달려간다.

세월은 긴 여행을 떠나면서도 절 뒤돌아보지 않는다.

세월은 많은 인생들에게 삶의 주름과 광의 상처를 안겨주는 날개 없는 구름과도 같다.

도도한 세월은 단 한 번도 심호흡 하나 하지 않고

시계 시침과 분침을 억압하며 잔소리하는 교관처럼 오직 달리라는 명령만 내린다.

누구라도 이 세월의 무게와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태만하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세월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루를 나눠주지만 사람들은 세월을 낚지 못한다.

사람마다 세월이 다녀간 흔적들을 지울 수 없고

죽음 같은 절망의 회초리를 맞지 않은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월의 원 나이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지만

세월은 꼭 나만큼의 나이를 안겨주고 지나간다.

우리에겐 세월의 뒷모습만이 가장 선명하다.

온갖 인생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채

오늘도 달리기만 하는 세월이 뱉어낸 무수한 잔해들이 여기저기 뒹군다.


이런 세월 앞에서도 감히 나는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면서 익어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 이 소리 저 소리 듣지 말고 살라고 귀가 어두워지고,

이 것 저것 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만 보라고 어두워진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고 육신의 늙어감이 허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이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는 고백이 우리의 것이기에 감사할 뿐이다.

그런 세월의 어간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은 받은 복을 세어보는 일이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에 대해서 일찍이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시간도 주님 안에서의 카이로스의 시간과 통합되지 않는 이 땅의 물리적인 시간은

그저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모든 만물도, 시간도 주님 안에서만이 날마다 새롭고 하루하루가 새날이다.

주님과의 적인 은총을 누리는 새 마음,  안에서만 새 것, 원한 것이 있다.


인생의 길목에서 종종 마주치는 친구 같고 불청객 같이 찾아오는 내 몸의 증상들은

내 혼의 자명종처럼 여기며 살 것이다.

나의 삶의 주치의는 주님이셔야 한다.

몸에 병이 나면 의사가 치료해주지만 삶에 탈이 나면 주님만이 치료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또 한해가 온통 주님 주신 선물이 되고 보석이 되어

주님의 소원(빌2:13) 잉태하는 풍성한 날들이 된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 아무도 모르는 희망의 선물, 사랑의 선물이다.

미래가 좋은 것은 그것이 하루하루씩 다가오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이 지금껏 맺어 주신 소중한 인연들을

생명처럼 여기고 챙기며 서로가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서로 보듬으며 부족하면 부족한로 함께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배우고 하늘의 풍성한 유산을 지켜내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로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

우리 인생의 본분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기며 잊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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