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나는 뭘 하러 이 땅에 왔지?

새벽지기1 2019. 11. 19. 07:24


1913년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낯선 곳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척박한 땅, 변변한 나무도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유숙할 곳을 찾았으나 그런 곳에 민가가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어두움 속에서 한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로, 홀로 양을 치며 살아가는 50대의 중년 남자였습니다. 그는 장 지오노를 집으로 안내하고 따뜻한 스프를 끓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루에서 뭔가를 꺼내 식탁에 쏟아놓고는 실한 것과 상한 것을 골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도토리였습니다. 정성스럽게 알찬 도토리 100개를 골라낸 다음, 다시 자루에 담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차려준 후, 아무 말 없이 그 도토리 자루를 들고 산등성이로 올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그 도토리를 한 알 한 알 심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부피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1차 대전이 일어났고, 온 유럽에는 무서운 파괴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소용돌이가 몰아쳤습니다. 젊은 장 지오노도 전쟁에 참가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 지오노는 기억을 더듬어 그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부피에가 거기에 여전히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여전히 하루에 100개의 도토리를 심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그 주위는 푸른 숲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매년 장 지오니는 그곳을 찾았고 말없이 나무를 심는 부피에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35, 한 산림 감독관이 처음 보는 울창한 숲을 발견하고 당국에 보고하였습니다. 의회는 그 숲으로 조사단을 파견하였습니다. 국회의원들, 산림전문가들, 고위 관료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엄청난 숲은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숲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일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짧은 책의 내용입니다. 장 지오노가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후, 20년 동안에 걸쳐 다듬고 또 다듬어 완성하였습니다.

 

원래 엘제아르 부피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외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죽었습니다. 그 후, 부피에는 사람들이 전혀 살고 있지 않는 이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슬픔에서 깨어난 그는 어느 날,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었습니다.

 

그렇게 10, 20년이 지나자, 황무지는 점차 울창한 숲으로 변화됐습니다. 말라붙었던 시내에는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엘제아르가 해 온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숲이 스스로 자라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희망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엘제아르 부피에는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나무를 심기 위해 이 땅에 왔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던, 그 일은 모두 모두 십자가에 달리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인간은 살 생각만 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언제나 죽을 생각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죽으러 오셨는가?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겟세마네로 올라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그 곳은 올리브 나무가 심겨진 아름다운 동산이 아닙니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올리브 열매를 모아 기름틀에 넣고 기름을 짜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산산이 부서뜨려 으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곳에서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기를 원하나이다.”(22:42) 그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천군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예수님과, 기도를 돕기 위하여 천군 천사를 보내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구원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군 천사를 보내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쳐부수고 나를 왕으로 세우면 된다고, 부자로 만들면 된다고, 내 병을 고쳐주고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게 만들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입니다.

 

네 몸을 으깨고 갈아서 기름을 내어라.” “십자가에서 네 몸을 찢고 부숴 피와 물을 내어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에게 원하는 것입니다.

것을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뭘 하러 이 땅에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