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중략)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중략).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문정희 시인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카피 문구가 있습니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 가 핵심입니다.
뜻 밖의 폭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부신 고립. 사랑하는 사람 앞에 고립은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동화입니다.
시인은 폭설 때문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합니다.
눈이 안 오는 하늘이라면 하늘을 찔러서라도 눈이 내리게끔 할 기세입니다.
구조 헬기가 나타나면 추락시킬 기세입니다.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시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