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생방송을 좋아할까? 진짜이기 때문이다.
가짜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한밤중까지 자지 않고 생중계를 보려고 하는 것도 진짜를 놓치기 싫어서,
그때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맛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늘 ‘라이브’다.
가짜가 있을 수 없고, 편집이 있을 수 없다.
NG가 있어도 되돌리지 못하고 그냥 계속 간다.”
한근태 저(著) 「고수의 일침(미래의 창, 3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불교의 윤회론(輪回論)은 다음 세상에서 또 한 번의 삶을 말합니다. 옳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일생이 ‘단 한번’ 주어짐을 말합니다.
‘현대시의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는 폴란드의 여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연습 없이 죽는다(중략)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중략).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패자 부활전이라든가 삼 세 번이라는 말도 있지만,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단 한번이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꽃은 낙화(落花)할 줄을 알면서도 황홀하게 눈 맞출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두 번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두 번 오지 않음을 알고,
오늘과 만남과 일을 최상이 되게 꾸미는 삶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