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다!(롬4:13-25: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

새벽지기1 2019. 2. 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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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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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출현

의의 예증(실례)

의의 전가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3:21-31)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원리!

(이신득의 신앙의 기초)

4:1-8: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

4:9-12: 할례와 무관한 칭의

4:13-25: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

하나님의 의의 전가

<기독교 3대 전가>

5:12 53:4-6 5:18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다!(의의 출현)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다!

(4:13-25: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

 

본문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해석과 설명


바울은 앞서(9-12)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의 신실한 믿음 때문이었으며,

그에 대한 징표에 불과한 외적 할례는 의를 얻는데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함을 언급했다.

이제 바울은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성도들 간의 관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1)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

여기서 세상의 상속자란 일차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실 것에 대한 언약이다.

하지만 본문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특별히 약속된 후사를 주어 그를 통하여 그 후손이 하늘이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도 포함한다.(15:5)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을 지칭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보다 무려 430년이나 앞선다. 시내산 율법은 BC1446년경 모세가 수여 받은 것(20)이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아브라함의 언약(15)BC2000년에 맺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시내산 율법이 결코 침범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14)

사도 바울의 단호한 신학적 결단이 이곳에 나타난다. 만약 믿음보다 율법 행함을 의에 이르는 조건이라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언급된 언약이 진정한 상속자라면 바울 자신이 지금까지 계속 언급해 온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기독교 신학의 토대는 무너지고 말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이는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일수 없는 이유는 율법의 본질적 기능이 범죄 한 인간에 대한 정죄와 저주에 있기 때문이다.(15)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죄와 무죄의 기준이 되는 율법이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곳에서는 죄를 범 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죄 된 행위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죄에 대한 정죄함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율법이 제정되기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이 율법에 따라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브라함은 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를 정죄할 법(율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율법을 지킴으로 인한 정당한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상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15) 믿음이 결과는 이와 같이 믿음의 후손들에게 공고한 약속으로 나타난다. 한번 성립된 법률이 객관성과 타당성을 인정받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만이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을 모든 후손에게 견고하게 한다는 것이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본문은 약간 난해한 구절이다. 여기서 율법에 속한 자아브라함에 속한 자를 각각 유대인그리스도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그럴 경우 문맥 자체가 전체적인 흐름을 역행하게 된다. 따라서 문맥상 율법에 속한 자영적인 이스라엘 속에 포함되는 유대인즉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신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는 믿음이 자취를 좇는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킨다.(12)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이는 70인역의 창17:5의 인용이다. 여기서 많은 민족이란 1차적으로 아브라함이 혈통적으로 여러 민족의 조상인 것을 가리킬 수 있다.(이스마엘 족속, 이스라엘 족속, 에돔 족속, 그후처 그두라의 후손들의 족속) 하지만 본절의 본질적인 측면은 아브라함이 모든 혈연적 민족들을 포괄하는 영적 이스라엘의 조상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는 창17:5에서 아브람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로 개명되는 사건의 본질적 의미.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어떤 측면에서 이 구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음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술한(13-16) 바울은, 이제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실제적 사건을 예로 설명한다.(18-25) 한편 여기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것은 문맥상 이삭의 출생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출생한 사건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사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함)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창12:1 말씀과 관련된 내용이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체 없이 순종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믿음의 순종을 주목하셨다.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창15:5별의 수와 같이 무수하게 되리라는 의미다. 이는 1차적으로는 언약의 아들 이삭을 통해 육적 이스라엘이 무수히 많아질 것에 대한 예언이며, 궁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한 영적 이스라엘이 많아질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

이는 생식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 즉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까지도 출산 능력이 완전히 중지된 상태를 말한다.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여기서 알고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테노에센으로 명확하게 보다라는 뜻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위가 그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것을 판단한 상황 속에서 인격적으로 결단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생식 능력이 완전히 없어졌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었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20)

이는 19절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창18:14이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을 하신 것은 처음이 아니다.

12:2-3(75)과 창15:5(85)에 이은 세 번째 언약(18: 99)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육체적 불가능성을 알고도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믿음이 더 견고하여졌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21)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신에 이르렀다. 믿음은 이처럼 철저한 신뢰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22)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서술함에 있어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도 다시한번 언급함으로서 이를 본장의 결론으로 삼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23)

23-25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구원의 원리가 아브라함이라는 특정 개인 분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용됨을 밝히는 부분이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이는 23절 내용의 반복이자 강조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적용된 믿음의 원리는 아브라함 뿐 아니라, 동일한 믿음을 가진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되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앞에서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바울은 본절에서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로 부활신앙임을 밝힌 것이다. 아브라함이 칭의 사건을 다루면서 이렇게 예수의 부활을 언급한 것은

부활이 믿음의 중요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모리아산 사건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부활을 확신했던 예표적 사건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과 이에 대한 믿음이 칭의와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25)

바울은 앞서 아브라함이 칭의 사건을 다루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과 이에 대한 믿음이 칭의와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본절은 그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여기서 내줌(헬 파라디도미)’재판에 회부하다는 의미를 지닌 사법적 용어로, 본절은 BC700년경 이사야가 고난 받는 종의 예언(53:6)이 성취되어 하나님은 세상에게 예수를 내어 주셨다.(3:16)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여기서 의롭다 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시스법률적 변호혹은 칭의(justification)’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물론 관계되지만,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확증되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우리의 칭의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셨던 것이다.

 


묵상과 적용


믿음의 도전!

본문은 아브라함과 성도들 간의 관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은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밝힌 후

18-25절에서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실제적 사건을 예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며’(18)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고’(19)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20)

오히려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20)

하나님의 약속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21)했다.

그래서 그것(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것이다.(22)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실을 여기 기록한 이유

바로 23-24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23-24)

본문은 분명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구원의 원리가 아브라함이라는 특정 개인 분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용됨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의 태도와 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4:19-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