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사경회의 유익과 영성!
(느9:1-5)
◆본문
1.그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사경회)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회개)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서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어느 덧 2018년이 꼭 한 달 남았네요.
세월이 갈수록 문명은 발달하는데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고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선 우리 지체들이 너무 바쁜 것 같습니다.
벌써 지난 3주째 가지장 모임을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수업과 과제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지체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수여대가 기말고사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이어서 다른 캠퍼스도 기말고사를 시작하겠지요.
그렇게 올해도 저물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달 말 우리는 금식사경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가지원이 가지장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가지장님! 그런데 금식 왜하지요?”
아마 갑자기 이런 질문하면 곧 바로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정말 금식을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단순히 금식이 두렵기 때문에 피하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다음은 아주 존경받는 훌륭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신자였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좀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주변 분들의 권유로 금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에게 40일 금식은 부담될 것 같아 20일을 작정하고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 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작심 삼일이라고 사흘이 되니까 서서히 배에서부터 요동을 치며 유혹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 때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감나무에 몇 개의 감이 매달려 있더군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감만 가득하네.'
눈을 감아도 감만 보이기 시작하는데 몇 번이고 입에 침이 고이더라구요. 그래서 감을 떼어 던져 버릴까 생각해보았지만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유혹을 이겨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1주일을 넘기고 하루하루를 보태며 넘기는데 12일 아침, 결국 나의 인내는 바닥이 나고 감을 따먹음으로써 금식기도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금식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금식과 행군은 왕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식사경회의 영성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왜 금식 사경회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느헤미야 말씀을 통해 금식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느혜미야서는 성벽 재건의 책입니다.
페르시아 아닥사드다 왕의 대신이었던 느혜미야는 BC444년 왕의 허락을 얻어 42,360명의 동포들을 이끌고 귀국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벽재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것은 하드웨어일 뿐 소프트 웨어인 영성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마침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성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수문앞 광장은 매년 각종 성회 뿐만아니라 재판과 공회가 열리던 성읍의 중심지였습니다.
집회는 일주일간 계속되었습니다(8:18).
이것이 느헤미야 8장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초막절이 끝난 이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모였습니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1절)”
아니 일주일간이나 집회를 했는데 또 다시 왜 모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부흥의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론
그러면 금식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첫째, 영적 자기갱신(更新)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집에서 아무리 샤워를 하고 자기 관리를 잘 해도 가끔은 온천도 가고 사우나에도 갑니다.
왜 일까요? 세상이 오염되고 더럽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우리 몸에 때가 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몸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사우나도 가고 온천도 갑니다.
하지만 영적 갱신을 위한 노력을 하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갱신(更-고칠갱 新-새로울 신)’이란? 사전적 의미로 ‘이미 있는 제도나 기구 따위를 고쳐서 새롭게 함’이란 뜻입니다.
‘영적 갱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갱신’은 사경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성 집회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먼저, 금식하며 조상과 자기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이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니다. 그들 스스로 결단한 것입니다.
사람이 곡기를 끊고 무엇을 한다는 것은 상황이 그 만큼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회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사람들과 절교를 결단했습니다.
이방 사람들과 절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며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살던 여러 이방 민족과 결혼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예컨대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참고로 느헤이먀13장 23-25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도 재건되고 성벽도 재건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화, 우상화, 세속화로 찌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노천 광장에 모여 이렇게 성회를 열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새롭게 경신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물신주의와 세속화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우리 민족과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는 심각한 영적 위기 상황입니다.
지난 해 말 성복중앙교회에서 제1회 간사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날 특히 주목을 끈 것은 ‘2017 한국 대학생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 결과였습니다.
그 설문 분석결과를 보면
첫째, 개신교 학생 비율이 15%로 5년전 보다 2.2% 감소한 수치입니다.
둘째, '주일 성수'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었습니다.
조사결과 기독교인이지만 자유로운 신앙을 위해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교인’은 28%에 달했습니다.
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셋째, ‘신앙의 확신’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응답비율이 52.9%였는데, 5년 전 2012년(63%)보다 10.1% 포인트 줄어든 수치입니다.
이 또한 심각한 일입니다.
설문 결과 분석 결과 또 한 가지 특징은
“개신교 학생과 비개신교 학생 사이에 생활과 의식” 전반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삶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 대한 분석 결과입니다.
'거의 하루 종일 슬프거나 짜증난다'는 문항에 응답한 비율은
개신교 학생 20.3%고, 비개신교 학생은 24.8%으며,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도
개신교인 비율은 21.7%, 비개신교인은 24.1%였고,
'혼전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개신교 학생 비율은 39.1%,
비개신교 학생은 41.3%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교회는 무너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피폐화 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교회학교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학교 다음은 어디입니까? 청년 대학부이며 장년부입니다.
한국교회의 영적 미래는 참으로 암울합니다.
<합1:1.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2.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백성이 방종에 빠짐)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사라짐)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징계가 두렵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께 금식하며 무릎 꿇어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2:12)'
사무엘은 범죄 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삼상7:6)'
요나의 경고를 받은 니느웨에는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3:5)'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의 전반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금식사경회가 다시한번 우리 자신에게는 영적 갱신의 계기가 되고
우리 민족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면 금식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둘째, 말씀 연구가 부흥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2017대학생 의식조사 결과에 보면
기독대학생들은 1주일간 성경읽기와 개인기도에 사용한 시간은 합쳐서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주일 동안 성경을 읽은 시간은 평균 24분에 그쳤는데, 이는 2012년(64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1주일간 기도한 시간 역시 2012년(59분)의 절반 수준인 31분이었습니다.
아예 성경을 읽지 않거나(63.7%) 기도를 하지 않는 비율(38.3%)도 5년 전 조사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기독대학생 35.1%만 성경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결과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무 의미 없는 교회 출석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금식사경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금식사경회의 유익 중 하나는 오직 말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과 집중적으로 한 권(이상)의 성경을 마스터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올 금식사경회는 예레미야서를 강해할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성경 통독 한번 안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매우 슬픈 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뷔페를 먹어도 한 두 끼가 지나면 배가 고픈 법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밥을 먹게 되고, 당이 떨어지면 당분을 먹고, 단백질이 부족하면 고기를 먹습니다.
그런데 왜 ‘영양실조’에는 그렇게 신경 쓰면서 ‘영적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지경인데도
아무런 치료나 처방을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영적으로 교만하거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경회(査經會)란? 직역하면 ‘성경을 조사한다’는 뜻으로 영어의 ‘Bible study’와 같습니다.
교회 용어사전에는 “연례적으로 특별강사를 초빙하여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기본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고 수일간에 걸쳐 성경공부를 하며 은혜 받는 집회 또는 특별기도회를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국 교회는 선배들의 이 사경회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사경회 모습은 어땠을까요?
1901년 평양에서 열린 여자 사경회에는 1백50리에서 3백리 이상 떨어진 삭주 창성 의주 지역에서도 몇 주일 동안 먹을 쌀과 옷을 짊어지고 왔다. 다음해에 평양에서 열린 사경회에는 4백명 가량이 모였는데, 이들 지역뿐 아니라 황해도와 서울, 전라도 목포 무안에서도 올라왔다. 특히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자립' 정신에 따라 참석자들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사경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곽안련 선교사는 1910년 자기가 인도한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여행비와 체류 비용을 부담하면서 강원도 동해안에서 200마일(리로 환산해라)을 걸어온 14명을 소개했다. 그는 먼 거리에서 오는 교인들의 경우 쌀자루나 땔감을 지거나 이고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고 증언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강연과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은 이들은 과거 자기가 도둑질한 물건이나 돈을 돌려주고, 교회 안팎에서 범한 죄악을 토로하며 용서를 구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사경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보면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낮 1/4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전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경회의 효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는 곳이 바로 앞장 8장 3, 6절입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3절-새벽부터 정오까지(오전 내내) 하나님이 말씀을 읽었다는 것과
6절-모든 백성이 ‘아멘’ ‘아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8장 8-9절을 좀 더 보겠습니다.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 금식사경회는 일주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번 금식 사경회에 참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금식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셋째, 예수 십자가에 동참 참예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8-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예루살렘의 풍경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열열이 환영하던 이들이 정확하게 5일 후 폭도로 돌변했습니다.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2-1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수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희생보다 믿는 자의 축복을 더 많이 강조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이 고되고 곤고해지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함께 할 수 있어도 고난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예수님은 이렇게 마땅히 취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해 대속물이 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취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 추수 감사절 예배를 마친 교회는 이미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명으로 성탄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온 거리에 캐롤이 울려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축제로 즐길 것입니다.
마침 우리는 성탄 다음날부터 금식사경회를 실시합니다.
우리에게 성탄은 기쁨이지만 성탄과 함께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함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혹시 여러분 중에 성탄의 기쁨은 나눌 수 있지만, 십자가의 잔은 마시지 않으려는 지체들은 없겠지요?
저는 지난해부터 금식사경회를 앞두고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계속 금식하면서 사경회를 해야 하나? 식사하면서 사경회를 할까?하는 고민입니다.
매년 ‘금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는 지체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꼭 금식사경회를 해야 하나요? 그냥 말씀 사경회를 하면 안 될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년 금식하는 거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금식의 영성은 포기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금식의 영성 중 하나는 예수 십자가에 동참 참예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로 살겠다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도 기꺼이 지겠다고 합니다.
주로 이런 고백을 언제 하는지 아십니까?
경배와 찬양 시간에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이성적인 고백보다 감성적인 고백을 많이 하지요.
마치 꿈을 꾸듯이 말입니다.
하루 밤만 자고 나면 까마득히 일어버리는 고백입니다.
이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진정한 신앙고백과 헌신의 결단은 이성적이고 의지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고백은 경배와 찬양시간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고난의 십자가 아래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금식사경회는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증명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치사한 신앙생활 하지 마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빌1:29)”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금식은 극기 훈련이나 자기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자기 의사 관철도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금식은 헛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식은 우리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의 쓴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는 자세로 이번 금식사경회에 참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금식이 두려우십니까?
그러나 자원하여 금식하지 않으면 반드시 강제로 금식할 날이 임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기회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20019년은 20018년과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햇가지장 때와 작은가지장 때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지원 때와 가지장 때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3박 4일간의 짧은 금식이지만
분명 영적으로 의미 있는 금식수련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 사모함으로 지체 없이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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