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우리를 가장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시 23:5)

새벽지기1 2017. 11. 19. 06:32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5)  

 

시편 23편의 후반부(5-6절)는 내용상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시는 모습(23:5)과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확신(23:6)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흔한 손님이 아니라 가장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신다. 광야의 목축문화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덕목이다. 그것은 광야와 같은 곳에서 나그네를 보살피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곧바로 위협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도 손님접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시내산 언약과 관련된 율법은 이방 나그네의 압제를 철저히 금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지냈었기 때문이다(출 22:21). 그런 점에서 나그네를 접대하는 덕목은 단순히 목축문화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문화적 배경과 더불어 출애굽의 역사적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손님 접대를 중요시 여기는 것은 대접에 대한 예의범절과 절차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의 본문은 손님을 맞이하는 절차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 첫 번째 절차는 집안에 들어서는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기름은 감람유에 향료를 섞어 만든 것인데, 집주인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맞아하면서 환영의 표시로 손님의 머리에 바른다. 이것은 구약시대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기 위하여 기름을 붓는 의식과는 구별된다. 그런 차이는 각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가 다르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제사장이나 왕을 위한 기름부음에 사용되는 동사는 ‘마사흐’인데, 손님의 머리에 기름바름에 사용되는 동사는 ‘다센’이다.

 

‘다센’의 기본적인 의미는 ‘살이 찌다’로서 ‘번성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집주인이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번성의 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다른 면에서 향료를 넣어 만든 기름은 일종의 향수 역할을 한다. 먼 길을 걸어온 손님의 몸에서는 땀과 먼지 등으로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집주인이 손님에게 기름을 발라줌으로 그런 냄새를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름 바름은 일종의 손님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다.

  

(2) 두 번째 절차는 포도주가 담긴 잔을 건네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의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상징이며(창 27:28), 사람에게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한다(사 16:10; 렘 48:33). 그러므로 손님에게 포도주 잔을 건네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바라는 주인의 호의적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도주 잔을 건네주는 것에는 또 다른 실제적인 면이 있다. 먼 길을 걸어온 손님은 광야의 무더위 속에서 심한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손님에게 포도주 잔을 건네주는 것은 갈증과 더위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손님은 포도주 잔을 마시면서 그 동안의 피곤과 갈증을 해소할 뿐 아니라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가 있다.

 

(3) 세 번째 절차는 손님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손님을 향한 환영의 마지막 단계는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문화에서 음식상은 단순히 음식을 나눈다는 것보다 더 깊은 차원의 의미가 있다. 음식의 나눔은 언약 체결 의식에 동반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은 시내산 언약 체결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출 24:11). 그것은 화목제의 제물 나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레 7:15). 언약으로서의 음식 나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마 26:26).

 

집주인은 그 동안 손님의 뒤를 쫓아왔던 원수의 보는 앞에서 밥상을 차려주었다. 여기에서 밥상과 원수 대적과의 관계는 목축문화의 관습을 통하여 조명해야 할 요소이다. 유목민이 일단 나그네를 자기 집 천막의 손님으로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손님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전적으로 그 집주인의 책임이 된다. 이 책임은 의식주의 문제뿐만 아니라 신변 보호의 보장까지 포함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나그네가 집주인의 손님으로 영접이 되면, 그의 대적은 그때부터 집주인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은 곧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대적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친 광야에서의 고된 삶이 전부이겠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의 영접이 기다리고 있다. 광야에서의 삶도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속에서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지만, 마지막 하나님 집으로의 영접은 고난의 모든 근본 원인들이 제거된 참 안식의 보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음’의 마침표이다.

 

이 땅은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 이 땅은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을 준비하는 거룩한 기회이다. 이 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그 때문이다(미 5:11-12).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는 하나님을 위하여 힘든 일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상급을 미리 준비하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식하는 자가 되면, 그것으로 이미 상을 받은 것이어서 하나님께 받을 상급을 놓치게 된다.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이어야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이다(마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