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나은, 더 좋은(히8:1~6)
히브리서는 아벨로부터 시작되는 구름 같은 믿음의 증인들은 더 나은 언약, 더 나은 소망, 더 나은 피와 희생물,
더 나은 영원한 대제사장,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하며 기꺼이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히브리서에 보면 '더 ~ 한'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7:19절에는 '더 좋은 소망이 있다'고 하였고, 7:22절에서는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하셨으며,
9:11절에서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고, 10:34절에서는 '우리에게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다'고 하셨다.
11:16에서는 '우리에게 더 나은 본향이 있다'고 하셨으며,
11:35절에서는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악형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8:6절 한절에서만 세 번이나 반복해서 '더 ~~한'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더 아름다운 직분이란 '탁월하다, 우수하다.'는 의미로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고 우월한 대제사장직을 의미한다.
또한 더 좋은 약속이란 '더 높은, 더 뛰어난, 더 유익한'이라는 의미로써 구약의 약속들 특별히 대제사장의 제사를 통한
구원의 약속들보다 더 높고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의미한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란 더 좋은 약속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 중재자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 대하여 혹은 예수님의 은혜에 대하여 계속해서 '더 좋은'이라는 비교급을 사용하며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느 것과 견주어도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은 구세주시오,
더 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천사와도 비교할 수 없고, 구약의 대제사장과도 비교할 수 없고,
율법을 통해서 주어진 약속과도 비교할 수 없이 더 높고 더 좋은 완전한 구원자시오 은혜의 수여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떻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세월이 어떻게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은 예수님, 더 지혜로우신 예수님, 더 능력자이신 예수님,
더 온전한 구원의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좇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자.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목사요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be)'고 노래했다.
"인생의 첫 부분은 인생의 마지막을 위해 지어진 것,
가장 좋은 그 부분은 아직 오지 않았네.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네."
그의 시를 애용했던 오스왈드 챔버스는
"어떤 여건 속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해했다.
20세기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시에서 노래한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The best has not come yet!"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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