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제가 이 본문에 대하여 설교하기는 첫 번이올시다. 그 전에도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교훈이 어느 거상하지 아니하리요마는 이 마태복음 5장 하반부와 특별히 이 마지막 절을 읽을 때마다 그 교훈이 너무 높아서 감히 생념(生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은혜를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모든 교훈을 충실히 대언 할 의무가 있는 것을 깨닫는 의무감과 하나는 제가 교역 생활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났고 이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귀중한 직분을 맡아 왔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너무나 부족해서 보다 더 높은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가운데 이 말씀을 택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믿기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도 보다 더 높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신 줄 압니다. 이 시간에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상고해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을 향하여 온전 하란 말씀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아브라함의 구십 구세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 하라.』신명기 18장 13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 하라.』
신약에 보면 에베소서 4장 13절에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또 골로새 1장28절을 보면『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1장 4절에『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먼저『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하신 주님의 이 말씀의 뜻을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 하라는 권면은 꼭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라는 뜻은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오, 사람은 사람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모두 온전함 같이 우리 사람이 동등 적인 의미에서는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온전함 같이 사람은 사람으로서 온전하라는 그 뜻인 줄 압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작은 촛불이 햇빛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햇빛이 온전한 낮에 비치는 것과 같이 작은 촛불이라도 가리우는 것이 없으면 작은 촛불로써 온전히 비칠 수 있는 줄 압니다. 봄 동산에 나가 보면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 중에 앉은뱅이꽃은 큰 모란이나 장미가 될 수는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모란꽃이 온전히 피는 것과 같이 앉은뱅이 꽃도 앉은뱅이 꽃으로서 온전히 피는 줄 압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이렇게 권면한 줄 압니다. 또 여기 온전하라는 뜻은 장성하고 성숙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가령 어른과 아이를 비교하면, 어른은 장성해서 성숙한 의미에서 온전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는 불완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장성해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온전하게 자라서 온전한 자리에까지 이르라는 뜻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재적으로 주신 모든 능력을 발전시켜서 하나님의 뜻하신 그 온전한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인 줄 압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인격 완성의 최고 표준을 하나님께서 온전하심 같이 온전 하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서 온전한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온전 하라는 뜻인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온전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는 예수께서 이 마태복음 5장 하반부 21절에서 마지막 절까지에 깊은 진리를 가르치셨는데, 이 깊은 진리를 가르치시면서『너희들이 이와 같이 하는 가운데 점점 온전한 자리에 이를 것이라』고 가르친 줄 압니다. 여기 21一-26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옛 사람들에게 한 말을 너희가 들어서 안다. 다시 말하면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으리라 이렇게 말했지마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 대하여 노여워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 형제를 라가 라고 하는 사람은 공회(公會)에 붙잡힐 것이요, 형제에 대하여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온전한 자리에 이르려고 하면 여섯째 계명을 지킬 때에 단순히 우리의 손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만 끊지 않으면 그것이 온전한 것 아닙니다. 여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대하여 노여워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이미 너희 마음 가운데서 살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이미 살인한 까닭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노여워하는 사람은 마땅히 심판을 받을 것이요, 다른 사람을 라가 라고 하든지 미련한 놈이라고 하든지 욕설한 사람이야말로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들이 온전한 자리에 올라가려고 할 것이면 너희 마음으로 이 계명을 지켜야 하며, 근본적으로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의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므로 형제 자매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려고 제단에 가져왔지마는 네가 그 때에 네 형제 가운데 너로 말미암아 노여워하는 자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옆에 좋고 돌아가서 그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그 예물을 드리라. 그래야 네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제물이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네가 과연 하나님 앞에 예배하려고 할 때 너로 말미암아 노여워하는 사람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목하고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여야 그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온전한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면 먼저 여섯째 계명을 지키고 마음으로 살인하지 않도록 지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 27-32절까지의 말씀은『간음하지 말라. 옛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지마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죄를 범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자리에 나아가려고 할 것이면 단순히 육신으로 간음만 피하는 것으로 만족치 못한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을 행한 것이니 우리 마음으로도 간음을 행하지 않도록 마음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네 오른 눈이 가장 귀하나. 그러나 네 오른 눈이 너로 말미암아 범죄 하게 하면 네 오른 눈을 뽑아 버리라. 한 눈 가지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 다 가지고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리라』하셨습니다. 손 가운데도 오른 손은 매우 귀합니다. 그렇지마는 우리 오른 손이 나로 말미암아 범죄하게 하면 그 오른 손을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손 가지고 천당 가는 것이 두 손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친구 가운데 심히 친하고 가까운 친구요 많이 도와주는 친구가 있으나, 그러나 그 친구를 통하여 나로 하여금 제7 계명을 마음으로 범하는 그런 유혹이 있다고 하면 그런 친구와 절교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그 책이 우리로 하여금 음욕을 품는 자리로 인도하면 그 책을 불살라 버리라는 뜻입니다.
왜 청년들로 하여금 영화관과 극장에 가지 말라고 권하는가 하면, 흔히 요즘 영화나 연극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으로 이런 방면에 마음으로 죄를 짓게 해서 청년을 타락하게 합니다.
전에 성 에네짓트라고 하는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아무리 힘써도 마음이 깨끗해지지를 않아서 너무 안타까워 온 몸을 벗고 가시덤불 위에 뒹굴어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청결(淸潔)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전에 어떤 성자는 마음 가운데 불같은 정욕을 이길 수 없어서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 얼음을 깨뜨리고 얼음 속에 벗은 몸을 던져서 온 몸을 얼려서 마음에 깨끗함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자리에 이르려고 할 것이면 마음으로 7계명을 범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되겠습니다.『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그 다음 33-37절을 보면『헛된 맹세를 하지말로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그 맹세를 지키라는 이런 말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맹세는 절대로 하지 말라. 너희 믿는 사람은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 하라. 그 이상 하는 것은 죄니라』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옛날에도 사람들이 진실성이 없어서 이렇다고 저렇다고 보통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점점 꼭 이렇다고 맹세한다, 혹은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성전을 두고 맹세한다, 혹은 제단을 두고 맹세한다는 그러한 풍속이 생겼습니다. 이런 풍속은 사람의 말에 진실성이 없어서 생겼습니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아예 믿는 사람은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 하고 다 믿을 만큼 진실한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온전한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면 말에 진실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오래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 많이 합니다. 꼭 누구를 속이려고 하지 않지만 말을 꼭 사실대로 하는 습관이 부족해서 말을 주의해서 하지 않고 되는대로 하니까 그대로 거짓말이 됩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또 어떤 대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사교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사교적으로 일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고자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또 미안한 말이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상업적인 거짓말을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속담에『거짓말이 장사하는 절반 밑천은 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으레 거짓말 좀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도 독립해서 정치가들도 많이 있고 고등 공무원이 많이 생겼는데 소위 정치적 거짓말이 많이 생겼습니다. 으레 정치에는 늘 진실할 수야 있나, 정치에는 늘 모략이 있고 거짓말이 있지-이렇게 생각하는 정치가가 요사이 많이 있습니다. 속된 세상에 속된 사람들이 속된 일에 어떤 말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하지마는 예수님께서 여기 하시는 말씀은『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은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에 진실 하라』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좀 더 온전한 자리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8-48절 가운데 주님께서 두 마디로 말씀하셨는데 실상은 한 마디 말씀입니다. 처음 한 마디는『옛 사람에게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하였거니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차라리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까지 도려 대라』하셨습니다.
그 다음 말씀은『옛 사람들에게 그런 말이 있거니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원수를 사랑하라. 다시 말하면 원수도 원수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 갚는 법은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하라. 한 걸을 더 나아가서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말씀하시기를『다른 사람 말할 것 없이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고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의 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너희들이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선하지 못한 사람, 불의한 사람에게도 꼭 같이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라』하셨습니다.
또 그러면서 소극적으로 한 가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원수를 도무지 사랑하지 아니하고 원수 갚을 대로 갚으면, 보통 사람과 다 같이 하면, 보통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 있느냐? 세리도 그와 같이 아니하느냐? 불신자, 이방인도 그와 같이 아니하느냐? 너희가 다른 사람보다 좀 나으려면 원수까지도 사랑하여야 하느니라』고 일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 가르치기는 쉽고 듣기는 쉬울는지 모르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제가 좀 생각해 보았는데, 원수를 좋아한다는 말은 아닌 줄 압니다. 우리가 원수를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원수를 찬성하고 협조한다는 말도 아닌 줄 압니다.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여기 예수님의 하신 말씀대로 원수에 대해서도 악의를 가지지 말고 원수에게도 선의를 가지고 그 사람이 참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원수라도 우리 믿는 사람은 그에게 대하여 악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선의를 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또 그리고 원수가 어떤 경우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때에 내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주어서 원수에게라도 자비를 베풀라는 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남한에 사는 사람 특히 믿는 사람들에게도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해하는 많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로 대하여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제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투쟁하는 것이 사랑의 채찍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들이 사람으로서 그들이 참된 복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새 사람 되고 새로운 이상을 갖기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들이 주리고 목마를 때 우리가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줄만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17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친히 한 가지 더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께『주님이시여,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이『네가 계명을 알지 아니 하느냐.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와 같이 하면 네가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청년이 대답하는 말이『그것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다 행했습니다.』그러니까 주님께서 이어 하시는 말씀이『네가 온전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하셨습니다.
온전한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면 물질을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물질은 매우 필요합니다. 물질이 있어야 삽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사이는 소위 황금만능주의 시대라고 돈만 있으면 그만인 줄 압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돈으로 사람의 인격까지 헤아려 보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의리는 돈보다 더 귀합니다. 친구도 나라도 민족도 돈보다 더 귀합니다. 학교도 교회도 돈보다 더 귀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의리를 돈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친구도 나라도 민족도 돈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내 영혼의 구원을 돈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돈보다 귀한 것 많습니다.
부득이한 경우면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의리를 위해서 내 있는 것 다 팔아서 던질 만한 그런 경지에까지 나갈 때에 우리가 좀 더 온전한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줄 압니다. 마음으로도 살인이나 간음하지 말아야 되고, 또 물질을 초월하여야 우리가 점점 온전한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줄 압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올시다. 제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방면에 힘쓰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온전히 죄 없는 자리에 올라갈 수가 있겠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신학자의 의견이 구구합니다. 웨슬레 같은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기독자의 완전론(完全論)을 주장했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격 완성에 대하여 가장 높은 표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가장 높은 표준을 얻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할 것뿐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하여 달음질할 것뿐입니다,.
또 우리가 이 달음질을 혼자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계시니 점점 우리가 힘쓰면 높은 곳으로 갈 줄 압니다.
그리고 요한 1서 3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육신으로 이런 완전성에 이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다음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우리도 장성해서 주님과 같이 되겠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 교우, 부형 모매(母妹)님들, 보다 더 높은 은혜를 사모하십시다. 낮은 데를 바라보지 말고 보다 더 높은 것을 바라보십시다. 흐린 날은 낮은 곳에서 구름이 덮이고 안개가 덮여서 음침합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거기에는 여전히 밝은 햇빛이 비칩니다. 보다 높은 은혜를 사모해서 작년보다 금년은 좀 더 높이, 지난달보다 이 달은 좀더 높이, 아니 어제보다 오늘은 좀 더 높은 은혜에 올라가서 조금 더 완전한 그 지경에 가까이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55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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