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인생의 낙조 (디모데 후서 4:1-8)

새벽지기1 2017. 2. 13. 06:57



인생의 일생을 여러 가지로 비유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일생을 한 해에 비유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봄은 청년 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봄은 잎이 새로 돋고 꽃이 아름답게 피고 새가 노래하는 그런 모든 것이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 청년 시대로 말하면 꽃이 피는 것과 같이 육체가 잘 발육하고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청년을 청춘이라고도 말합니다. 이팔청춘이란 말도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줄 압니다.
그렇게 되면 여름은 우리 장년 시대에 비유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여름은 녹음방초(綠陰芳草)가 우거지는 때입니다. 모든 곡식이 자라고 나무 열매가 자라고 모든 것이 극히 왕성해서 성하는 그런 때가 여름이올시다.
마찬가지로 우리 장년 시대는 모든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대입니다.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도 하고 여러 가지로 활동도 하고 인간 일생에 있어 가장 활동이 많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각 방면으로 활동이 성한 시기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맑은 가을은 우리 인생의 노년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가을은 청추(淸秋)라고 해서 검은 구름이 걷히고 맑은 날이올시다. 가을은 열매 맺는 때입니다. 곡식이 익는 때, 모든 열매가 다 익는 때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인생의 일생 가운데 노년 시대는 다 완숙한 시대요, 열매를 많이 맺는 시대요, 그을 특히 늦은 가을이 되면 모든 나뭇잎도 자주 빛 혹은 붉은 빛으로, 혹은 누런빛으로, 만산홍엽이 온 산야를 덮는 그런 아름다운 계절이 됩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이렇게 인간의 일생을 1년에 비해서 말할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인간의 일생을 하루에 비할 수도 있는 줄 압니다. 특별히 성경을 보면 그런 사상이 있는 줄 압니다. 여기 모세가 지은 시편 90편 14절을 읽으면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아침에 주의 인자로 만족하게 하사…』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아침이라는 말은 하루의 아침이 아니고 인생의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아침, 인생의 일생을 하루에 비교하면 청년 시대는 아침과 같습니다. 아침은 일어나는 때입니다. 아침은 모든 것을 경영하는 때, 아침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아침은 모든 것을 다 새로이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와 같이 아침에 비할 때 청년 시대는 시작하는 때입니다. 모든 것을 경영하는 때입니다. 여러 가지 공상도 많고 이상도 경영도 포부도 많은 때가 청년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의 일생을 하루로 비하면 낮은 장년에 비할 수 있습니다. 낮으로 말하면 아침이 다 지나고 조반을 먹고 하면 농사하는 사람은 다 들로 나갑니다. 열심히 일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상점으로 나갑니다. 직공은 공장으로 나갑니다. 관리는 관공서로 나갑니다. 다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년 시대로 말하면 청년 시대에 꿈꾸었던 그 포부를 달성해 보려고, 그 이상을 실현해 보려고, 다 각기 자기 방면에 나가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활동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낮이 지나면 점점 해가 서산에 넘어가게 되고, 점점 서산에 가까워지게 되면 무엇이라 하는가요? 저녁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저녁이 또한 있습니다. 노년 시대는 우리 인생의 저녁 시대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녁은 일하다 쉬는 때, 저녁은 일터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때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제일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게 될 때에 저녁 노을이 서산을 덮게 됩니다. 낮에 검푸르던 구름, 안개에도 햇빛이 비치면 얼마나 아름답게 저녁 노을로 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녁은 아름다운 낙조를 보는 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년 시대는 인간의 낙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인간의 일생을 1년에 비해 볼 때는 노년 시대를 가을과 같이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일생을 하루에 비해 보면 노년 시대는 낙조와 같은 저녁의 경치를 볼 수 있는 그런 시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계에 있어서는 아름답습니다. 으레 저녁 노을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인간 생활에서 본다면 노년 시대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노년 시대라고 해서 저녁 노을이 온 하늘을 아름답게 덮는 것처럼 이 세상을 끝마치는 사람은 과히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있는 스가랴 라고 하는 책 14장 17절을 읽으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저녁에 빛이 있으리라』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날이 장차 임할 때에는 어두워갈 때에 오히려 저녁에 빛이 있으리라. 저녁에 아름다운 빛이 있어야 아름다운 노을이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노을이 없습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있기에 검푸르던 구름도 아름답게 장식해서 아름답게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노년 시대도 아름다운 노년 시대가 되려고 할 것이면 노년 시대에 그 시대를 비추어 주는 저녁일지라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볼 것 같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해라고 했는데 예언의 햇빛이 우리 생활에 비칠 때에만 노년 시대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줄 압니다. 또 잠언 16장 3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에서야 얻으리라』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인데 의로운 길에서 야만 얻으리라. 이 영화의 면류관을, 백발 시대의 아름다운 면류관을 얻으려고 할 것이면 의로운 길로 행하는 사람만이 이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이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활에 의의 햇빛이 되는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고, 우리가 일생을 걸어갈 때에 주를 따라서 의를 행하는 그 사람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을 터이요, 그 사람에게는 과연 저녁의 아름다운 빛이 있어서 그 노년 시대가 과연 아름다워지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연설할 때나 설교할 때 기독천년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기독청년은 어떠하여야 되다, 기독청년의 사명이 어떠하다, 기독청년의 특색이 어떠하다…기독청년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기독노년이란 말을 듣지 못합니다. 이미 믿는 장년은 기독장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독장년이란 말을 별로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독노년이란 말도 별로 듣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독노년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기독청년이 있으면 기독장년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청년이 나이 좀 많아지면 장년이 되니까. 또 기도장년이 있으면 기독노년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장년이 좀 나이 많으면 노년이 되니까.


오늘 저녁에 이렇게 존경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모셨는데,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기독노년의 특성을 말씀 그리겠습니다. 노년의 특성은 못 들으신 줄 압니다. 기독노년은 어떤 분인가를 몇 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독노년 시대는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완숙하는 시대입니다. 곡식이 무르익는 것과 같이 모든 실과가 붉고 혹은 누렇게 잘 익는 시대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노인들의 노년 시대는 모든 것이 완숙하는 시대입니다. 믿음도 완숙하고 기도하는 것도 모든 습관도 모든 인격도 완숙해서, 모든 것이 완숙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청년 시대는 잘 믿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시험을 받고 흔들립니다. 노년 시대에 나이 많기까지 예수를 끝까지 믿은 분, 그 노년 시대의 신앙이야말로 완숙해서 어떤 환난이나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완숙한 시대입니다.


전에 서머나의 감독으로 있던 폴리캅이 86세 때에 핍박을 받아 로마 감독 앞에 나아갔습니다. 지금이라고 우상에게 경배만 하면 생명을 살려 드리겠는데, 이렇게 노인을 내가 차마 처형하기 어려우니 한 번만 잠깐만이라도 이 우상에게 경배하라고 합니다. 이 때에 폴리캅이 백발을 휘날리며 관원 앞에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내가 86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고 그 간 나를 이와 같이 축복해 준 그리스도였는데 내가 어찌 그를 배반할 수 있겠느냐?』완숙한 믿음일 올시다.
여러분, 구약 가운데서 여러 유명한 사람의 생활을 가만히 읽어보세요. 가령 아브라함의 신앙은 청년 시대에도 물론 좋았지만 점점 여러 가지 경험을 겪고 지나면서 마지막에 볼 것이면 얼마나 그의 신앙이 더 완숙했습니까? 야곱 같은 사람은 본래 천성이 좋지 못한 사람입니다. 깜찍하고 남 속이고 아버지도 장인도 속이고 어떻든지 속여서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성품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일지라도 벧엘의 경험을 얻고 얍복강의 경험을 얻고 여러 가지로 고난을 당하고 요셉을 잃어버리고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공경해 내려오는 동안에 마지막에 야곱이 저 애굽에 내려가서 점점 나이 많아서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올 때에 요셉에게 한 말과 여러 아들들에게 축복한 말을 읽어보세요. 야곱의 노년 시대는 믿음이 완숙한 시대입니다.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는 젊어서부터 담대하고 애국심 있는 청년입니다. 그렇지마는 오랫동안 120년을 살면서 온갖 경험을 다 겪은 후에 마지막에 느보산 기슭에 올라가서 저 가나안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이스라엘 민족에게 절대로 율법을 순복하고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로 네 앞에 두었는데 절대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라고 간절히 권하고 세상을 떠난 광경을 볼 때에 얼마나 그 신앙이 완숙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년 시대는 완숙하는 시대입니다. 젊은 시대는 폭풍우가 많고 집안에도 폭풍우가 많고, 싸움도 잘합니다. 젊어서는 사회에 나가서도 여러 가지 분주한 시대입니다. 장년 시대도 청년 시대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활동하기 위하여, 성공하기 위하여, 자기 권리를 얻기 위하여, 지위를 얻기 위하여 굉장히 활동하고 투쟁하고 노력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 많아져서 60이 지나고 70이 지나면 세상의 지위, 권리, 아심, 포부, 이런 것을 얻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다 지나보아야 별 것 없고, 노력하다가 활동하다가 점점 쉬는 시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평온한 시대입니다.
또 청년 시대를 보면 특별히 시험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욕의 시험, 환경의 시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여러 가지 시험이 있어서 마음이 불안하고 부끄러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마는 노년 시대는 그런 모든 젊었을 때 당하던 시험이 다 없어집니다. 또 장년 시대에 당하는 시험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시험도 노년 시대가 되면 다 없어집니다.
마치 우리가 낮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집에 돌아오는 것처럼, 그 시대는 젊었을 때의 꿈, 젊었을 때에 투쟁하던 것, 장년 시대에 노력하던 것을 다 쉬고 마음 가운데 별로 다른 생각할 것 없고 평온하고 쉬는 시대입니다.  


셋째로, 잘 믿는 이가 어느 때 예수와 동행하지 아니 하리요 마는, 노년 시대는 동행하는 시대입니다. 문자 그대로 주님과 한 가지로 사는 시대입니다. 전에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언제든지 주님과 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시대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묵상하고 세상의 다른 생각을 별로 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당을 생각하고 언제든지 성경을 생각하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대입니다. 여기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 가운데도 그런 분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엘리야와 에녹이 항상 주님과 동행했다고 하지 않아요? 항상 동행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넷째로는, 우리가 어느 시대에 다른 사람을 축복하지 아니 하리요 마는, 이 노년 시대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구약을 읽으면 그렇지 않아요? 특히 야곱이 자기 자손에게 축복했습니다. 이삭도 나이 많은 다음에 특별히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모세도 그러했고 사무엘도 그러했습니다. 노년 시대는 특별히 아이들과 젊은 사람을 사랑하고 귀여워해서 어떻든지 아이들과 청년들이 이 앞으로 자라나서 잘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는 그런 때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노년은 말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은 어느 때에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 하리요 마는, 특별히 노년 시대에 많이 기도하는데 아이들과 청년과 교회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 다음의 자손들과 장래를 위해서 축복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많은 노인이 교회를 위해 축복하고 가정을 위해 축복함으로 우리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노년기는 소망의 시대입니다. 낙조가 아무리 아름답지만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점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그렇게 아름답던 낙조도 점점 희미해집니다. 희미해져서 온 사면이 황혼으로 변합니다. 어두워집니다. 어두워지면 저녁별을 봅니다. 인생의 노년시대가 점점 기울어져서 그 햇빛이 서산에 넘어갈 때에 황혼이 지나게 되면 반짝이는 별이 보입니다.
우리 인생의 노년 시대가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가 디모데 후서 4장을 읽었지만 거기 보세요. 사도 바울이 점점 연세가 높아갈 때에 기록한 글인데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하는 말이 『내가 관제를 붓는 것처럼 이제 다 부음을 당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서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준비해 두셨다. 나만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오시기를 기대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준비해 두셨다』고 했습니다.
소망의 별이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 의 일생도 그렇습니다. 젊었을 적에 예수를 따른 후에 춘풍추우(春風秋雨) 그야말로 일생 동안 교회를 위해 고생했습니다. 점점 그 건강하던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눈도 어두워집니다. 주일을 당해도 사랑하는 교우들과 같이 예배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컴컴한 굴속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거의 어두웠으나 이때에 신령한 눈이 밝아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육신으로 볼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그 때에 볼 수가 있었습니다. 빛나는 주님의 얼굴을 그 때에 볼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신령한 귀로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녁에 별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6절을 보면『우리의 겉 사람은 부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했습니다. 5장 1절에 보면『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우리의 집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고 되었습니다.


기도노년 시대는 이렇게 소망의 시대올시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통해서 어느 때에 기도하지 아니 하리요 마는, 특별히 노년 시대에 오는 축복이 심히 큰 줄 압니다. 우리의 신앙을 통해서 자연히 우리의 노년 시대는 믿음이 완숙한 시대로 변합니다. 모든 풍파와 폭풍우는 지나고 평안한 시대를 맞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시대가 됩니다. 우리의 육체가 점점 쇠약해질 때에 영원한 하늘 나라의 소망을 찾는 축복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1955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