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하나님의 사역의 모습(거울)이 창조에서 명백하게 나타남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명백한 증거에도 인간의 시력이 둔감하여(어리석음) 어떤 유익도 보지 못 한다는(무능과 불능) 것이다. 창조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한다.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급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인간의 조급한 마음은 순수한 진리를 부패시킨다. 비범한 철학자나 평범한 인간 모두는 마음이 병에 감염되어 어리석음과 무지를 갖고 있다. 또한 세상에 바른 길을 제시해야 될 학자들의 무지는 세상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모독하는 광기(狂氣, 신성모독)에 가득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을 맹목 추종하는 일반인은 얼마나 심하게 바보처럼 하나님을 모독할 것인가? Inst., I, 5, 11.
세상의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비롯한다. 사람의 미로(迷路, labyrinth)와 같은 마음에서 자기의(자기를 위한) 신(神)을 갖는다.(TV드라마 “라비린스: 미궁,2012”은 13세기 프랑스 카타리파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교황이 이단으로 정죄한 카타리 파에 성배(聖杯)가 있었다는 미스테리 모험 이야기다) 비범한 사람인 철학자들이 신들을 만들고, 이성과 학문으로 하늘을 침입하니 얼마나 이율배반(二律背反)인가? 인간들은 이것저것으로 고안한 신(神)들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창안하였다.
칼빈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다신에 빠지게 하였고, 이집트 신비주의는 아무 유익이 없는 헛소리를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조장하였고, 에피쿠로스 학파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방안을 추구하였다고 제시하였다. 미신을 만드는 고대 철학을 극복한 교부 신학 후에 이루어진 중세 스콜라 철학은 다시 고대 철학을 수용하면서 이해를 추구하였다. 결국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확신하지도 못한 신들을 창안하여 끊임없는 논쟁을 유발시켰다. 그들의 교묘한 가르침은 인간의 마음을 어리석고 어둡게 하여 하늘의 신비(heavenly mysteries)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헛된 가르침에 집착(執着)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욱 모호해져 결국 알지 못하는 신(神)을 숭배하게 된다. Inst., I, 5, 12.
순수한 종교(pura religione)를 부패시키는 사람은 유일하시고 한 분이신 하나님을 자신에게로부터 분리시키는 마귀(魔鬼)의 행동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를 마귀를 숭배하는 배교자라고 선언하였다(고전 10:20). 자신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멀어지게 한다. 사람은 스스로 교만하여, 생각이 허망해져 거짓 가르침에 속아 헛된 것 혹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요 4:22). 성령께서는 인간이 고안한 예배를 부패한 육의 모습이기 때문에 거부하신다. 인간의 결의(決議)나 관습(慣習)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배도(背道)이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계신하신 방법으로 예배해야 한다. Inst., I, 5, 13.
창조의 영광은 우리를 위해 빛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섬광(閃光)과 같은 빛으로 충분히 인식할 수 없다(불능무능). 하나님의 세계를 알려면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 조명이(illumine) 있어야 한다.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시(顯示)는 핑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주(居住)하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충만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부족하지 않게 인도하시는데, 인간은 치명적인 오류를 고집하며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내주(來住)하는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Inst., I, 5, 14.
인간이 순수하고 명확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또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우둔함과 욕심에 의한 것이기에 변명할 수도 없다. 인간의 양심의 타락과 게으름이 무지의 근본원인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종하면서 살지만,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은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타라 창조에 어그러지게 행동하며 창조주를 모욕하며 조롱한다. 인간은 자기 마음에 심겨진 종교의 씨앗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부정하며 다른 신을 창안한다. 부패한 씨앗에서 온전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인간은 우주의 신비를 맛보면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기가 고안한 몽상(夢想)을 그려낸다. 인간은 자기의 머리나 감정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와 말씀에 순종하여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한다. Inst., I, 5, 15.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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