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I권 5장의 제목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천지창조와 계속된 통치에 의해서 빛난다.”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명백하게 자기를 현시하신다. 인간의 마음에는 종교의 씨앗이 있다.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이 눈만 뜨면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옷을 입음 같이(시 104:2), 빛난 의복으로 계시하심을 찬미하였다.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의 영광이 창조, 궁창에 있다.
인간의 가장 큰 복(福,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요 17:3).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복되게 하셨다. 칼빈은 창조 세계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거울”로 제시하였다(시 19:2).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간 속에 있다 하였다(롬 1:19-20). Inst., I,5,1. 면경(面鏡)방언->민경, 명경, 밍경, 게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학식이 높거나 없는 모든 사람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배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움의 도움으로 지식의 비밀을 더 깊이 꿰뚫을 수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창조자의 솜씨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솜씨는 우수하고 분명하고 질서가 정연하다. 하나님의 지식을 공부하는 학도는 분명하고 질서정연하고 예리한 인격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몸을 해부해보아도,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알 수 있다. 갈렌(Galen, 129-199. AD, 고대 로마의 해부학 대가)의 해부학을 보아도 인간 몸의 정밀, 정교를 고백할 수 밖에 없다. Inst., I,5,2[명료성]. 히포크라테스는 서양의학의 아버지, 갈렌은 해부학의 창시자이다.
옛적 철학자들은 인간을 ‘소우주, microcosm’로 적절하게 제시하였다. 인간은 맹인(盲人)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밖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일을 즐겨하지 않고 게으르고 교만하여 자기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왕좌에서 성전 처마 밑에 새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어린 아이를 사모하였다. “창조의 거울”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창조물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의 철학자를(행 17:28, 아라투스의 Phaenomena) 인용하면서 ‘그의 소생’이라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기원을 증명하였다. 인간은 경험에서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른다. 삶에서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사랑을 맛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Inst., I,5,3.
그런데 인간은 파렴치한 배은망덕(背恩忘德)을 더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넘치는 창고가 내부에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교만(驕慢)과 허풍(虛風)으로 일관한다. 인간의 교만과 허풍도 “신격의 표적(divinitatis sign)”을 나타낸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다는 명목(구도求道)으로 방황하기까지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신격(神格)의 씨앗(divinitatis semen)”을 조작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괴물 같은 영(hodie multos spiritus)”들도 존재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기에 “광란(狂亂, madness)”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연을 은폐하고 왜곡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외면시켰다. 그렇게 외면된 인간, 짐승과 같은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 천상의 모든 보화를 동원해야만 한다. 인간의 존귀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제우스처럼 외눈박이 키클롭스(Cyclopes)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고귀성을 악용(惡用)하여 하나님께 도전하였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대항하였다. 현대에는 인간의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 The Theory of Natural Rights)을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적극 거부한다. Inst., I,5,4.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칼빈은 비난한다. 영혼이 육체를 섬기기 위한 기능이라는 견해를 거부한다. 이성은 육체와 유기적인 대칭 관계를 갖고 있다. 영혼은 육체와 구별되며 놀라운 장치의 모체로 신기한 일을 많이 만든다. 그래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신격의 표증이 있다는 것을 틀림없는 증거한다. 영혼에는 꿈, 미래를 예지하는 기능이 있다. 인간이 신적인 기능이 있으면서도 창조주를 모른다고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주정신’이라는 헛된 사색으로 헛된 신성을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 하나님의 지식에 불필요한 혼합을 피해야 한다. Inst., I,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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