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고경태목사

기독교강요(9) 창조주의 창조와 사역의 명료함

새벽지기1 2016. 10. 1. 08:49


칼빈은 하나님을 묵상할 때에 1)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2) 창조 세계를 통치하신다. 3) 우리를 존귀하게 하신다.로 우리의 믿음을 이끄시는 것을 기억하도록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해서 예배하며 기도해야 함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주신 은사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비록 우리 안에 신적인 성품이 있어도(divinitate), 복의 근원이신(Author) 하나님의 보좌로 향해야 한다.(T.아퀴나스는 신성이 됨을 목적지(terminus)로 삼았다. 유대칠의 T.아퀴나스의 요한복음 14장 독서에서) 인간은 명백한 하나님의 권능을 알며(천지창조) 찬양해야 한다. 욥과 이사야에서 창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어떤 피조물도 존재할 수 없었다. 창조에서 만물의 기원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물의 유지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야 한다. Inst., I,5,6.


둘째 하나님의 사역은 자연의 통치이다. 자연과 인간을 다스리심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친절과 복을 주시지만, 의인에게는 관대함으로 악인에게는 엄하심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악한 자를 벌하시고, 선한 자를 보호하시며 변호하시고 충만하게 하며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심이 명확하다. 악한 자에 대한 징벌이 연기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회상할 기회가 된다. 의인은 죄인에 악행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조급하지 않고 오히려 풍성한 사랑을 지지하고 신뢰한다. Inst., I,5,7.


시편 기자(시 107편)는 자신의 절망의 늪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환난과 곤란에 쌓인 환경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providentiae coelestis)에 있는데, 당사자는 부성적 관용을(vero paternae clementiae) 증거하는 노래로 승화시켰다. 경건한 자는 환난과 곤란에서도 위로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고, 불경건한 자는 태평성대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향하여 불평과 욕망을 토해낸다. 창조의 눈부신 극장(illustri theatro)에서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눈부시게 창조에서 빛나지만, 이를 본 사람은 백에서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다(비교 de civitas Dei, xi, 3.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칼빈과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가능성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바르게 묵상하면, 공허한 사색에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건전하고 열매가 있는 일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는 어두움에 있지 않는데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불경건한 자의 악함과 교만과 탐욕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기 궤휼(詭譎)에 빠져 하나님을 더욱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광대하신 하나님의 지식이 창조 세계에 있다. 하나님의 지식은 깊은 감동과 지성의 경탄(驚歎)이 나도록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壓倒)되어 하나님을 바로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직접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보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Inst., I,5,8.


경건한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 지식은 공허한 사색, 단순한 두뇌의 지식이 아니라, 정당한 지식으로 예배를 충동하며 내세의 삶에 소망을 두도록 마음에 뿌리를 내리어 결실을 맺는다. 인간이 하나님을 탐구 혹은 파악할 수 없다(Finitumnon est capax infiniti). 인간은 호기심으로 하나님의 본성으로 조사하기 위해서 구하면 안 된다. 우리는 경외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본성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성찰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 수 있다. Inst., I,5,9.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경배하게하며 내세의 삶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자비와 엄하심이 현세에서 불완전하게 알지만, 내세에는 완전히 밝히 드러날 것이다. 현재에 하나님께서 아무도 벌하지 않으시지만, 죄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섭리는 명확하다(事必歸正). 하나님의 권능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윗처럼 환난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 때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창조에서 주의 지혜와 권능을 보여주시며, 의와 선과 자비를 수행하신다. Inst., I,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