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나단에드워즈

부흥을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찬성하고 추구하라 / 조나단 에드워즈

새벽지기1 2016. 6. 16. 08:50


성경의 모범들과 경고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원수들을 대적해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시고자 할 때, 그 일에 있어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화롭게 하기를 더디게 하며 소극적으로 드러누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하나님을 크게 격노케 하는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구원대장이십니다(히 2:10). 그러므로 그분은 자기의 깃발을 꽂으실 때 자기 백성이 그분에게로 집결하지 않으면 당연히 크게 분개하실 것입니다. 혹은 그분이 원수들에 대항해 나팔을 불면서 영광스럽게 전진하실 때 자기 백성이 따르기를 거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경우에 살아 있는 모든 영혼이 주의를 기울이고 그 부름에 아주 기쁘게 부응하며 조심스럽고 부지런히 그 부름에 순종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사 18: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이사야 26장 10-11은 그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그분의 영광과 위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를 보여 줍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미국에서 동트게 될 천년왕국


성령의 이런 역사는 정말 비상하고 경이롭기 때문에 성경에서 자주 예언된 하나님의 저 영광스러운 역사의 여명이나 최소한 서막일 수 있습니다. 이 역사가 미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많이 보이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어느 아주 멀리 떨어진 변두리, 즉 항해를 하지 않고서는 다른 세상과 접촉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될 것임을 밝힌 성경 본문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60:9, “확실히 섬들이 나를 앙망할 것이며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내 아들들을 먼 곳으로부터 데려올 것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새롭고 더 탁월하게 하시고자 세상에 어떤 영광스러운 일을 성취하실 때, 아직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고 아직 아무런 기초가 놓이지 않은 곳에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현저히 드러나 보이게 하시며, 그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것으로 보이게 하시며, 더 명백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상을 천국으로 바꾸려 하실 때 이미 잘 성장하고 있는 곳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시작하십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에서 빛이 비치게 하시며, 세상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물이 가득한 곳이 되게 하시며, 건조한 사막이 땅에 물을 내게 하십니다. 사 41:18-19,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니라”(사 43:20)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위해 어떤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실 때 더 낮은 끝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하실 때 세상의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비천하며 가장 어리고 가장 연약한 부분, 즉 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마지막으로 세워진 곳에서 시작하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흥을 반대하는 자들의 위험


저 영광스러운 추수기를 도래케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진흥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가 스가랴 14:16-19에 나와 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초막절을 저 영광스러운 영적 잔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에 하나님의 백성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사야 60:12에 나타나 있는 대로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스가랴 14: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 썩을 것이라”. 사사기 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러한 일에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즐겁고도 힘차게 그 일을 진흥시키기 위해 분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길입니다. 역대하 12장에 보면 다윗을 이스라엘 왕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어난 다윗을 도왔던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특별하고 명예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까? 22절,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두 말할 나위 없이 이것은 영적 다윗이 세상에 자기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 그를 돕고자 그와 함께 나타날 하나님의 군대의 모형으로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거룩한 산 시온 위에 왕으로 세우실 때 여호와를 도우러 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훨씬 더 많이 베푸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부흥을 증진시키기 위해 힘써야 할 사람들


<공직자들의 의무>

시 2:6-7,10-12, “내가 내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노라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는 내가 너를 낳았노라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새 왕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모든 사람, 특별히 공직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존경의 표시로 자신들의 충성을 표현하기를 원할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소홀히 하는 자들은 즉각적으로 응징을 받아 길에서 망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그러한 일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고 그 일을 진흥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관원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영예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장막을 세우는 때에 이스라엘 족장들이 나아와 족장답게 헌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5: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목사들의 의무>

하나님의 눈은 다른 누구보다도 복음의 사역자들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일어나 이와 같은 일들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영화롭게 하며 부흥을 격려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부흥을 진작시키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헌신하도록 부름받은 바로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특별히 그리스도 왕국의 장교들입니다. 그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시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과 이스라엘이 해야만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이라는 거룩한 일에 고용된 우리는 성읍의 파수꾼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온 문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시온의 적법한 왕이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원수에게서 그들을 구출하려 하실 때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문을 열어 드리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진노를 얼마나 크게 촉발하겠습니까?

 

신앙의 부흥이 시작될 때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굼뜨게 행동하며 퇴보적이며 무덤덤해 보이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럽겠습니까? 그리스도와 사도 시대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가장 크게 불쾌해하시고 가장 심하게 분노를 나타내셨던 대상들은 유대인 가운데 바로 복음의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그리스도가 그러한 과오에 대해 그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보십시오.

 

목사들은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시는 데 있어서 자신보다 더 많이 사용하시는 다른 목사들에 대해 시기심을 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흥의 때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좋은 태도는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시는 방식과 수단을 존중하면서 온전하고도 기꺼운 마음으로 위대하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의무>

공직자들과 목사들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영혼은 이제 일어나 부흥에 있어 하나님을 인정하고 부흥을 진흥하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저주를 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광야에서 장막을 세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이 때 모든 사람은 자기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을 진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각자 처하게 하신 곳에서 자기에게 속한 일을 함으로써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대의 경성함과 주의와 부지런함을 발휘해야 합니다.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아 협조하며 가장 즐겁게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은 부흥이 자신들의 육신적인 마음에 소중한 어떤 것을 건드리기 때문이며 또 부흥이 자신들로 하여금 잘난 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들에게서 정욕의 대상들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라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자신들의 더러운 돼지를 더 사랑했습니다. 자기 동네에 군대 귀신이 들어있는 돼지 떼를 가지는 것이 그것들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부흥의 흠집들을 계속 열거하고 지적함으로써 부흥 속에 있는 선하고 영광스러운 것들보다 결함을 지적하기에 급급하다면 우리는 주의 일을 돕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대적해 싸우는 셈이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친구들이라면 부흥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날이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물을 올바른 빛으로 바라본다면 허다한 죄인들이 회심한 부흥의 위대한 사건은 여기에 동반되었던 모든 경솔함과 일탈보다도 훨씬 우리의 주의를 끌고 집중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 사건의 영광에 삼킨 바 될 것입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론』(전집7권), 균형잡힌 부흥론, 제2부, pp 453-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