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값주고 사서 자유케 하였느니라
- 한때 바울에게도 그 십자가가 거침돌이 되었었다. 구주께서는 위대하고 능력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군사력이 있고 행차 때마다 큰 화려함과 의식이 뒤따라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베들레헴 구유에서 나시고 목수로 일한 사람이 메시야라니, 그러한 관념이 그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했다. 그가 특별히 멸시했던 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십자가야말로 모든 것을 매고 있는 중심핀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는 십자가를 찬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 십자가를 모방하려고 애쓰고 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주목할 만한 삶과 비극적이고 매우 후회스러운 삶 속에서 드러난 한 우연한 사건이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고 가장 큰 일이다. 인류가 알았던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다.
- 사람들은 십자가는 오직 회심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떠나 더 깊은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쓰는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성숙도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체험의 극에 도달했을 때에도 십자가는 여전히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이 십자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진 모든 것의 원천과 샘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전적으로 자기를 새로운 위치에 서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죽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한다.
- 만일 십자가가 여러분의 중심이 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여러분이 “나는 예수님을 존경하며 그의 가르침을 가장 크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도 그냥 도덕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다. 십자가는 중심적이고 사활적인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온다. 그가 고후 5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의 요약이 17절로 나타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해주는 가장 놀라운 것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자신에게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구원들 가운데 하나이다.
- 십자가의 메시지를 알지 못한 사람은 육체를 따라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바울은 언제나 육체와 영을 대조하고 있다. 육체를 따라 사물을 본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추어 주시는 빛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그것이 사람이 자신에 대하서 가지는 사고방식이다. 이 세상에서의 자기의 위치와 지위의 차원에서 생각한다. 이것들의 차이로 세상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질투와 경쟁의식과 또한 모든 멸시로 가득 차 있다. 또 자신의 천성적인 능력과 기질의 차원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의 선함의 차원에서도 생각한다. 악을 극복하기 위해 선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적인 것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종교적인 것을 자랑하며 그리고 고상한 전통을 지키고 있음을 자랑한다.
- 사람들은 1. 자기들이 처한 방식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2. 전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고후5:15). -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간다. 언제나 자기를 의식하며, 자기를 쳐다보며, 자기를 존중하며, 그리하여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자랑으로 인도하고 자만으로 빠지게 한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은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며, 인류가 가진 저주거리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경쟁과 다툼과 투기가 거기서 나온다. 자기를 배부르게 하고 자기를 부추기며, 자기만이 여러 가지 것들을 가지기를 원하고 자기를 세우고 만족케 하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예민한 감정을 유발시키고 그러한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무력감을 느끼고,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그리하여 과민반응으로 피해 감정이 생기고 결국 자기 과잉보호적인 반응을 유발 한다.
설상가상으로 인간은 본질상 자기를 의뢰하며 자기 신뢰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운명을 마음대로 주장하는 자이다. 나는 내 영혼의 주인이다.” 그래서 종교를 거부한다. 세상의 심리학은 “너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한다. 자기가 자신의 신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두려워하며 과민한 상태에 있다.
- 바울도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의 죽음의 의미를 알기까지는 그러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의 모든 옛 삶으로부터 해방 되었다. 그 옛 삶의 진실을 알았을 때 그것은 수치스럽고 기만적인 삶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평화가 없고 안식과 만족이 없는 삶이었다. 자기에게 진실된 자기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십자가이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자기도 죄인이요, 비열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self)는 모든 것들의 원인이다. 그뿐 아니라 자기는 실패자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 속에 있는 죄, 자기 지체들 속에 있는 죄에서 누가 나를 건져낼 것인가?(롬7:24)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있어 나를 끌어 잡아당기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자신은 전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임을 인식한다. 이 모든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은 십자가이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고 계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전6:19-20). 그는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워졌다. 그는 구속 되었다.
- 그는 자기의 것이 아니다. 그는 전에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바울은 감격을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갈2:20)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마저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고전4:1-4).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얼마나 엄청난 구원인가! 바로 그 모든 일을 십자가가 해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살 것인가를 안 것이다.
-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사람이 십자가의 메시지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선과 악의 차원에서 생각하며 행동들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나갈 수 없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우리가 애호하는 것들, 세상이 눈부시게 펼쳐 보여주는 것들이 우리 영혼의 원수라고 밝혀 준다. 십자가는 그것의 겉에 발라놓은 모든 현란한 색깔들을 다 벗겨버리고 그것의 비열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 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주신 것은 단지 지옥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그 악한 삶에서 건지기 위한 것이다(롬2:11-14). 만일 내가 자기 중심적인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를 십자가로 가게 한 바로 그 일을 부인하는 것이요, 그 뿐만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믿는다고 자랑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곧 여러분의 성화는 십자가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이다. 십자가는 사죄나 회심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주장하거나 십자가를 떠나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해 가야 한다거나, 우리는 오직 성령의 영역 안에 들어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십자가는 거룩하게 되는 것을 주장한다. 십자가는 성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증이다(요일3:2-3). 십자가의 메시지를 알면 선한 생활을 살려고 발버둥 친다거나 율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만 의롭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고소 당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지도 않고 오히려 안식하는 것을 택한다. 이제 그 모든 것은 끝났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다. 이제 그가 죄 짓는다는 것은 사랑을 손상시킨다는 것이지 율법을 어긴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값으로 산 것이고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랑을 손상할 하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노예이다.
-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받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느냐를 가르쳤고 고난받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질과 화살들을 대처하는 방식도 가르쳐준다(벧전2:18-25). 오직 한가지 길 십자가뿐이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 우리도 다 죽어야 함을 가르친다. 마지막 원수는 사망에 대한 공포이다. 예수님은 사망에서 쏘는 것을 뽑았다(고전15:54-57). 그는 그를 믿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적인 죽음의 효력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사망의 쏘는 것을 제거하셨다. 그는 사망과 무덤을 이기셨다. 여러분은 그 쏘는 것이 없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살펴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가시면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다(요14:1-3).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한다(빌1:20-24). 죽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 그처럼 십자가로부터 사람이 자기의 가련한 자아로부터 건짐을 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가르침을 받고 능히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어떠한 고난이 온다 하더라도 그 고난을 어떻게 맞을지를 배우게 된다. 또한 승리하며 개선가를 부르고 죽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 놀라운 일인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여러분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가? 여러분 자신을 알았는가? 십자가를 바라 보라. 그러면 여러분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되며 그 자신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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