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새로운 본성
- 사도가 십자가를 그렇게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렸던 모든 축복의 원천과 중심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다. 십자가 없이는 복락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사도가 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내가 산상설교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 마음 속에 침투하지 못하였고 주님께서 자기의 죽으심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그들은 넘어졌다. 사람들이 크게 높이는 산상설교를 생각해 보자. 존귀하게 여기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의 힘으로 산상설교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상설교를 지킬 수 있고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복락이 우리 앞에 열려진 것은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로부터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그러므로”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다. 특별히 바울 서신들에서는 교리를 설정하고 “그러므로”라는 말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 당연히 이러저러하다는 뜻이다.
첫 번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오늘날 인류의 모든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사람이 하나님과 그릇된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문명의 방법으로 혼돈 속에 질서를, 그리고 평화를 정착시키려 얼마나 애썼는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위치에 있을 때까지는 결단코 그 평안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부와 학식과 감화력 권세를 가진다 할지라도 악한 자리에 있는 한 평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소망이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없이도 잘해 나갈 수 있다는 사람들을 내 버려둔 상황이 바로 현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이다.
- 사람은 하나님께 의존하게끔 지음을 받았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요소가 있다. 사람은 부와 희락과 술 취함과 여자와 포도주를 통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으로 만족을 얻기에는 너무 큰 존재이다. 그래서 쉼이 없고 만족이 없고 두려움에 차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메시지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든 요구가 거기에서 만족 되었고 또한 그 십자가가 우리들에게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게 되며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모든 자세가 변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며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됨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려다 보실 때 긍휼 어린 눈으로 내려다 보시며 용서하시는 눈으로 보신다. 또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미소를 지으신다.
- 두 번째 현재 인류가 처한 모습, 즉 죄의 보편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담은 인류의 첫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인류의 대표자로 삼으심으로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 후손 전체에도 미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그가 넘어질 때 그와 함께 다같이 타락하였다. 우리는 아담의 죄의 결과로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복음의 메시지가 이르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두 번째 아담으로, 두 번째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는 여러분의 대표자가 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를 믿기만 하면 그와 함께 죽고 형벌을 담당한 셈이며, 전에 여러분이었던 옛 사람과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아담 안에 속해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전적으로 새로운 출생, 새로운 시작, 새로운 본성, 새로운 생명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새사람이 된다(고후5:17). 그 결과 우리의 입장과 지위는 전적으로 달라진다(롬6:14). 사람들은 기독교를 그저 우리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것은 내 모든 입장이 바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 세 번째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롬:15).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내 계명이 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만족할 것이다. 그럴 수 없으면 나는 너희를 벌하겠다.”는 것이 율법 아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으로 율법을 요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요약하여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10:27)라고 하셨다. 문제는 율법은 여러분에게 그것을 지킬 하등의 힘도 주지 않는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사도는 말한다. 전혀 불가능 하다.
- 그러나 이 십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의 죽으심을 믿는 여러분은 그 처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지위에 서게 될 것이다. 은혜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다. 우리가 받을 만한 공로가 전혀 없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바라보시며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여러분은 전적으로 새로운 지위에 서있는 것이다. 십자가가 바로 그 지위에 서게 한 것이다.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떨며 서지 않게 된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전체 난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네 번째 더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 자기의 기쁜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내게 하늘문이 열리고 나로 기도할 수 있게 만든다. 기도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능하시고 거룩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한 우리의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 면전으로 갈 수 있는가?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아뢰면 참소자는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양심도 말하며 옛 것들을 들추어 낼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에서 우리를 정결케 한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을 내게 주셨다. 그는 내게 새로운 본성을 주셨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은혜 아래 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살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내 모든 원수들에게 대적하는 답을 할 수 있다. 모든 거룩한 영광 중에 계신 하늘의 하나님께 마저 말씀드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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