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 십자가와 구속(7) 제7장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말한다'

새벽지기1 2016. 5. 9. 06:49


제 7 장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말한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의 피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았는가? 십자가가 참 기이하고 놀라운 것은 사람이 아무리 여러 번 십자가에 관하여 설교했더라도 십자가에 관하여 할 말이 더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데 끝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영혼이 매우 보배롭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계셨던 것은 사람의 불멸하는 영혼의 가치때문이다. 물론 몸도 중요하고 또한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여러 많은 것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되는 것이 사람의 영혼이요, 우리가 죽을 때에도 계속 존재하는 것이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의 임무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신 것은 우리 몸의 병이 낫고 더 잘 먹고 더 많은 정보나 지식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주님은 오셨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놓고 몸마저 놓고 갈 때가 오는 것이다.

 

- 십자가의 메시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않으면 사람과의 관계도 전혀 바로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사람들과 하나님이 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일을 하라고 주님을 보내셨다. 죄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이고 무서운 것은 죄가 하나님을 거스려 모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죄는 자신을 세워 하나님과 겨루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과의 일을 단절시키며 자신을 신으로 세우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계속 “죄에 대한 심판이 있으며 죄는 형벌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께 사소한 일거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버지의 계명도 어기지 않으셨고 마귀마저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그가 죽으셨다. 십자가는 그 문제를 해명한다.

 

- 죄의 난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라도 가장 다루기 힘든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용서 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만일 다른 방식으로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셨다면,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로 보내 그 위에 자기의 진노의 잔을 부으셨겠는가? 창조는 말씀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용서는 말씀만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기의 독생자를 하늘의 궁정을 떠나 땅에 내려와 인성을 취하시고 사람처럼 사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매맞고 하나님의 침을 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러분이 도덕적인가 부도덕적인가,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한가 하는 등의 문제가 아니다. 십자가가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다.

 

-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느냐?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최고 되는 목적과 목표이냐?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자신을 드리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죄인이다. 그는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충성과 여러분 삶의 중심을 원하신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사람이 바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 두 번째 십자가는 선포와 능력있는 선언이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5) 하나님께서 그것을 공적으로 세우시고 선언하시고 그것에 주목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의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의롭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면서 어떻게 동시에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고 계셨다. 거룩한 진노가 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그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는 거기 십자가에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 역사의 중심에 서서 자기 아들의 몸 안에서 사람들의 죄를 향하여 진노를 퍼붓고 계셨다. 그는 죽었고 그의 흘린 피가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죄와 악에 대한 형벌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던 일, 곧 죄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행하였다는 힘있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난제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선포하고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죄인들이 화목해졌다.

 

- 세 번째 그리스도의 피는 해석과 선언, 선포에서 머물지 않고 초청과 호소이다. 우리에게 들으라고 요구한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2) 유대인들이나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나 율법에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야만인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 초청의 말씀이 전달된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바로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이 초청장을 주신다. 십자가의 피는 오늘날 온 세상에서 다른 아무것도 말해 줄 것도 없는 자들에게 말한다. 철학은 두뇌와 총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의 이성과 논리와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말한다. 도덕과 윤리는 이미 선한 사람들에게만 말한다. 또 종교는 그 종교에 열성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게만 말한다. 그러나 그 피는 다른 어느 것도 접근하여 말해 주는 이 없는 자들에게 말한다. 그 피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절대로 부르지 않는다. 자기 만족을 하는 그들을 위해서 오라고 하지 않는다.

 

- 이 십자가의 초청장은 실패한 사람들, 자기 잘못을 아는 사람들, 수치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 투쟁에서 지치고 곤비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진리를 알기 전에 선한 삶을 살려고 애썼으나 실패하고 지친 그런 사람들에게 초청장이 주어진다. 삶은 여러분을 낙담시켜 곤고하고 지치고 비참하고 슬프게 한다. 양심이 여러분을 때리고 정죄하고 과거를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자기가 썩어 있으며 자기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 두렵고 자신이 두렵고 여러분의 연약과 내일을 맞을 것이 무섭다. 죽음이 두렵다. 오 이 곤고한 사람인 나를 위해 누가 짐을 져 줄 것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십자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초청장을 발부한다.

 

-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받으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세상은 변죽만 울리고 지나가 버리고 여러분을 홀로 남겨두고 관심도 두지 않는다. 여기 여러분 모두에게 안식을 주실 분이 계신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앉아서 뿌린 피가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기다리고 멈추어 네 활동을 정지하라.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너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네 더러움과 누더기 같음과 비열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너희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쉬라.” 뿌린 피는 말한다. “나를 들어라 너희 죄가 징벌을 받았느니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죄의 징벌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나를 들어라 너희가 용서함을 받고 사죄를 받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하기 위해 내가 흘려졌다.” 여기에 정결케 하는 효력이 있다. 여러분의 비열함과 불의의 흠을 발견할 때 그것을 알게 된다.

 

- 뿌린 피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처한 그 비참에서 기쁨을 가질 수 있고 재 대신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성품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삶을 새롭게 출발하게 해줄 것이다. 새로운 능력과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줄 것이다.

십자가는 용서와 사죄의 새로운 은사를 공표한다. 화해와 회복과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선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영원한 소망 등 그 모든 것을 선포한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고 피가 흘려지기 시작했던 이 복되신 분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여러분을 초청하고 부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