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서 ‘숲속의 대장간’이라는 멋진 이름의 대장간을 운영하며 자유롭게 사는 분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20여 년 전 아내와 세 살 된 딸과 함께 이불 보따리 한 채 들고 인제 두메산골로 이주하여, 말도 키우고 대장간도 운영하면서 열심히 재미있게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그 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목사 부부 때문입니다. 교회 건축도 도맡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목사 내외는 교인들의 일상의 삶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땅을 사려고하면 꿈에 계시를 받았다며 그 땅을 사면 죽는다는 등의 말을 합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당노릇을 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가장 사악한 일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말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하나님 관을 세워주고 그분에게 올바로 반응하게 하는 일이 목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세 가지 대표적인 ‘잘못된 하나님 관’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잘못한 사람들을 징벌하는 무서운 폭군으로서의 하나님. 둘째, 인간들을 유용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최고의 성과를 독려하며 세상과 인간을 엄격하게 감독하는 관리자로서의 하나님. 셋째, 태초에 세운 창조의 법칙에 따라 세상 일이 진행되도록 내벼려 두고 수수방관하는 하나님.
하나님을 무서운 폭군으로 믿는다면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군림하며 교인들은 노심초사하여 숨고 피하려고 할 것이고, 엄격한 관리자로 믿는다면 우리들은 최고의 실적을 올려야하는 하나님의 영업사원으로 전락할 것이고, 수수방관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별 목적의식 없이 경솔하고 시시한 삶을 살 것입니다.
‘잘못된 하나님 관’으로 인해 최악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유대교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하나님을, 율법의 길을 이탈한 사람은 엄벌하는 무서운 군주로 보았고, 책임감이 강한 바울은 스스로 그 하나님의 충실한 일군이 되어 초대교인들을 잔멸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자신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서 그 일을 가장 잘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착각 중의 착각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에도 ‘잘못된 하나님 관’, 특히 무서운 감시자로서의 하나님과 최고의 업적을 요구하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에 대한 맹종과 교회일과 종교생활을 최우선으로 행하게 하여, 종교의 감옥에 가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종교와 종교지도자들과 율법과 계율의 포로가 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참 자유를 주고, 거짓 가르침에 눈이 멀어 생명과 재능을 탕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베풀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눅 4:18-19)
예수님께서 참 진리에 눈을 떠서 참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올바로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참 자유를 향유합니다.
참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의존해서는 절대로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3) 둘째, 이념이나 과학, 돈이나 권력, 남의 인정을 통해서도 참 자유를 절대로 누릴 수 없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쓰라린 외로움이다. 성공은 나를 우상으로 만들었고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단 한 가지를 갖지 못했다. 사랑으로 지속되는 관계 바로 그것이다.” 그는 1991년, 45세의 나이에 에이즈로 죽습니다. 참 자유는 오직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하나님,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깨달은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15)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며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은 고별설교에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잔치준비를 하고 장인을 찾아갑니다. 장인이 그 남자가 마음에 들어 결혼을 허락하면, 남자는 포도주 한 잔을 여자 앞에 내놓습니다. 만약 여자가 그 포도주를 마시면 결혼을 허락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찬에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결혼 허락을 받은 신랑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신혼집을 마련합니다. 그 기간이 대략 1년인데 이를 정혼기간이라고 합니다. 1년 후에 다시 와서 여자와 함께 신혼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고별설교대로, 우리들의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정혼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신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열심히, 담담하고 초연하게, 누리며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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