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뉘 죄로 인함입니까?

새벽지기1 2016. 3. 29. 07:3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시각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 입니까, 자기 입니까, 그 부모 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나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대답은, 대단히 잔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한 사람을 큰 불행에 빠뜨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죄로 인한 벌’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였고 광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며, ‘예수님-순종-기적’의 기계적인 도식으로 설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때 자타가 약한 믿음과 정성을 나무랍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을 내보지만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들을 참 자유와 하나님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기계적인 도식으로 가르치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들의 통상적인 생각들과 잘못된 인생관을 무너뜨려 전혀 새로운 세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세계를 보게 하고 인도합니다.

  

구미정 교수는 자신의 책, ‘두 글자로 신학하기’에서 조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조카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한 삼중 장애를 가진 아이다. 이만큼만 말을 꺼내도 사람들 표정이 대체로 어두워진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면 우리 가족은 그 아이 때문에 웃는다. 그 아이가 주는 즐거움이 그 아이로 인한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건 불변의 사실이다. 나는 그 어리고 연약하고 자연스러운 생명과 함께 있으면 나도 모르게 번잡하고 부박한 세상을 떠나 잠시 다른 세상에 머무는 기분이다.” 김경희 집사는 농아들을 위한 봉사를 오랫동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봉사는 그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앙 확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신부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헨리 나우웬은 정신지체아들의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곳에 존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으면 “집이 어디예요?”라고 물었고, 다시 기회를 엿보다가 또 이 때다 싶으면 “오늘 밤에는 집에 있을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두 마디가 그가 하는 유일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두 마디가 통렬한 질문이 되어 그의 심령에 깊숙이 박혔습니다.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깨닫기까지 5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깨달음을 ‘탕자의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합니다. 그 책에서 헨리 나우웬은, ‘정신지체아 존은 자신의 가는 길을 쉼 없이 점검케 하는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합니다.

   

생명 자체,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며 기적입니다. 우리들은 성공과 돈의 잣대로만 쓸모 있다 없다를 결정하는 천박한 시대를 살면서, 어느 새 그 천박한 기준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가둬버리는 잘못된 인생관입니다.

   

장애인들은 생명과 존재 자체가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 것인지 모든 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스승들입니다. 육체의 장애보다 마음과 영혼의 장애가 더 아프고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장애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살리는 일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내가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편견과 원망과 불평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게 주신 생명과 재능과 시간에 감사하며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메리온 웨이드라는 청년은 실험 중 화학약품이 폭발하여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이제 제 힘으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기도 중 시각장애인은 집안 청소와 관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 생각을 사업으로 발전시켜 1947년에 ‘서비스 마스터’란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회사의 경영 원리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종업원과 고객을 함께 만족시킨다는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회사는 나날이 발전하여 현재 40여개 국가에서 연 매출 100억 달러를 올리고 있습니다.


김태황씨는 사람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엄마 얼굴도, 친구 얼굴도 그에게는 언제나 낯선 얼굴들입니다. 이는 일종의 병이라고 합니다. 이런 희귀한 병을 가진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는 몇 백 명, 우리나라에는 김태황씨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합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절대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의 특징이나, 목소리, 특정 행동으로 사람을 판별하고 상대방의 중심을 본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편견이나 문제를 짚어주고, 장점과 가치를 찾아 주고, 상담해 주는 컨설팅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장애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지덕체를 강화하여 강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심리학은 자신 안에 억압된 본능의 힘을 해방시켜 나약함을 이기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모든 가르침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자체의 중대한 한계들을 덮어버리는 피상적인 것들입니다. 내 안의 한 가지 힘을 기르기 위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은혜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이란, 내 자질구레한 욕구의 횡포가운데 살지 않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탐욕스레 움켜쥐려하다가 실패하고 좌절하는 내 자아가 아니라, 후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첫째,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때 영적인 힘이 내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힘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깊은 교통입니다. 이 깊은 교제에서 나오는 힘만이 유일하게 창조적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힘은 파괴적이며 종교적인 힘은 억압적이지만, 영적인 힘은 창조적이며 자유롭습니다.

셋째, 오직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본능과 성령이라는 두 가지 동기가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불어오는 영적인 힘을 추구합니다. 이 힘은 본능을 초월합니다. 이 힘은 나와 남을 살리는, 고요히 확산되는 창조적인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지금... 어느 때보다도 이 빛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생명과 존재 자체에 무한 감사하며, 조용히 서두르지 말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