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목회자는 가라.” 모든 목회자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이 말은 책 제목입니다. 원제는 ‘The Unnecessary Pastor’, 즉 ‘불필요한 목회자’ 정도로 충분한 제목을 파격적으로 붙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 유진 피터슨은 세 종류의 불필요한 목회자를 열거하는데, 이는 단순히 목회자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오늘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목회자들은 불필요합니다. 세속 문화를 옹호, 강화하고 그 안에서 안정의 바탕을 제공하는, 즉 종교생활 열심히 하면 만사형통의 삶을 산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는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스스로를 대단히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불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한다고 자타가 생각합니다. 물론 중요한 존재들이긴 하지만, 그와 같이 ‘거만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불필요합니다.
셋째, 교인들이 요구하고 주장하는 측면에서 목회자는 불필요합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지도자와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집단을 관리해줄 목회자를 원하지만,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귀찮은 책임을 회피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들이 세상의 성공 기준에서는 자신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정말 필요한 일’을 자유롭게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힐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 5:41)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영광을 얻기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외에는 어떤 영광도 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도, 단 한번만 자신에게 절하면 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주겠다는 사탄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 하셨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세상의 삶은 서로에게 영광을 구하는 일로 가득합니다. 목사로서 가장 잘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칭찬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공평하게. 그러나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를 추켜세우며 헛된 영광을 구하다가는 예수님과 복음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왜 허구의 영광을 구하다 진실이 실종된, 생색과 아부만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2-14)
‘루시퍼’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사탄의 이름입니다. 루시퍼는 ‘빛을 가져 온 자’라는 뜻으로, lux(빛)와 ferre(가져오는)가 합쳐진 말입니다. 계명성은 별 중에서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밝은 별인 금성의 이름인데, 단테의 신곡과 존 밀턴의 실낙원 같은 책을 통해서 사탄의 이름으로 대중화되었습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가 품었던 생각이 바로 영광을 얻겠다는 그 생각입니다. 영광은 누구나 원하는 것, 그래서 누구나 가진 당연한 생각으로 여기지만, 사실 모든 불행과 재난의 근본 원인입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곧 ‘교만’입니다. 높아지고 독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언제나 ‘파괴’를 동반합니다.
사탄의 별명은 여러 개가 있는데, ‘거짓의 아비’(요 8:44), ‘밤낮으로 참소하는 자’(계 12:10), ‘말씀을 빼앗는 자’(막 4:15) 입니다.
서로에게 영광을 취하는 일, 대가를 바라는 선행, 눈도장, 생색내기, 아부, 진실 없는 칭찬 등등,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그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패시켜 악취가 나게 하고 믿음 생활을 헛된 몸부림으로 전락시켜, 애는 애대로 쓰고도 생산된 영광은 사탄이 가로챕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두 번째 시험에서 사탄은 엄청난 말을 합니다.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영광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오직 사람들에게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과 권세가 언제, 어떻게 사탄에게 넘어가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 우상을 숭배할 때 영광이 사탄에게 넘어갑니다. 모든 우상은 사탄의 변형들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사탄에게 넘어갑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No!라고 말하면 사탄은 우리를 절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둘째,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면, 영광은 사탄에게 돌아갑니다.
사탄과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사람들의 말로는 분명합니다.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이사야 14:12,15)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도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종으로, 그리고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낮아져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 곧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이며, 우리 모두가 해야 할일입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위하여 묵묵히 겸손히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반드시 높이십니다. 높아진다고 해도 끝까지 겸손합시다. 그리하면 마침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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