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새벽지기1 2016. 3. 17. 06:56

예수님께서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근처에 베데스다(‘자비의 집’)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 중앙에는, 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간헐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사가 그렇게 한다고, 또 물이 솟아오르는 순간 가장 먼저 연못에 뛰어든 사람은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들이 가장 먼저 뛰어들기 위하여 연못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병자들 중에 예수님의 눈에 띈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무려 삼십 팔년이나 된 병자였습니다. 그는 걸을 수가 없어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자 그 불쌍한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말씀에 병자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연못에 얽혀 있는 전설은 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한다고 해도 그 황당함은 감해질 수 없고, 오히려 더 기괴해집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나 물건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신적인 존재와 결합하여 신령한 힘을 가졌다며,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섬기게 만듭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미신입니다. 미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언제나 이를 엄히 경계하십시오. 미신은 ‘미혹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육신의 병만 낫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영혼의 병입니다. 수많은 영혼의 병을 앓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 결과 대단한 치유의 기적으로 몸이 나았다고 해도 그 기적의 의미는 퇴색되고, 하나님의 권능은 한낱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성경 곳곳에는 영혼의 병 목록이 적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 3:1-5)

   

스스로를 점검하십시오. 영혼이 건강해지면 마음과 육신도 회복됩니다. 영혼의 병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마리아도 천사도 아니고, 신령한 목사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생명의 원천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신뢰하고, 예수님을 닮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의 삼중고를 겪은 ‘헬렌 켈러’가 어느 날 숲 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니?” 그 친구는 별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눈 뜨고도, 두 귀 열고도, 별로 특별히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고, 할 말조차 없다니…” 그래서 그녀는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1월 호에 발표했습니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장엄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서 공연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이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서있으면 그 어떤 어두움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기적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셨던 일, 현재 하시는 일, 앞으로 하실 일들을 순식간에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너무나 크고 장대하여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단 시간에, 특정한 사람에게 행하신 아주 소소한 일들입니다. 존재 자체, 생명 자체가 훨씬 더 큰 하나님의 기적이며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 행하신 일이 아주 작은 일이며, 그런 기적이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우리들이 경험하게 될 새로운 창조의 맛보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기적들은 사망의 겨울에 활짝 피어나 다가오는 부활의 봄을 미리 알려주는 봄맞이 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그 동안 사탄의 지배 하에서 사망 권세에 휘둘리며 그저 육신의 안녕만을 바라며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왕 사탄과 싸우셨고, 이기셨습니다. 타락과 함께 단절되었던 영원하신 하나님의 창조가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기다리다 절망하거나, 내게 임한 기적을 그저 육신만을 위한 단세포적인 사건으로, 우연한 이벤트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기적은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기쁨과 꺼지지 않는 영광을 잠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C.S. 루이스가 말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육신은 조랑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조랑말을 다루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언젠가는 더 큰, 날개달린, 빛나는, 지축을 흔드는 말을 자유자재로 타고 즐길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마구간에서 앞발을 구르며, 콧김을 내뿜으며 어서 빨리 우리를 태우고 싶어 안달하고 있을 이 말을 타고 하나님과 함께할 신나는 질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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