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매 순간 하나님의 기적을 보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 가나로 가셨습니다. 가나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 기적을 행하셨던 곳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백방으로 아들을 살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예수님 오시기만을 기다리던 중,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십시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 이상한 말씀이 흘러나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왕의 신하는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그래서 재차 간청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그 말씀을 들은 아버지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니라.” 왕의 신하는 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는 도중에 집안의 종들을 만나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아들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살아난 시점을 헤아려 보니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감격한 왕의 신하와 온 가족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
표적과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적을 봐야 믿음이 생긴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적을 보면 올바른 믿음이 생긴다는 생각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목적과 기적을 바라는 이유가 무병장수, 부귀영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전혀 다른데 있습니다. ‘칼 야스퍼스’는 현대인의 특징을 불안과 공포와 절망 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이유를 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알은 발이나 날개가 없어서 굴러다녀야 합니다. 크기나 종류에 상관없습니다. 알은 언제 깨질까 언제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리고 조심해도 쉽게 깨져버려서 절망적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 알에서 깨어나 튼튼한 날개로 높이 날아오르는 일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여기저기 굴러다녀도 깨지지 않는, 누구보다 큰 황금 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립 얀시는 페루 오지에 있는 쉬피보 인디안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를 “하나님 당신께 실망하였습니다.”라는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마을에는 한 젊은 선교사의 헌신으로 40년 전에 세워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6개월 된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죽어가는 어린 아들을 위하여 선교사는 몸부림을 치며 기도하였지만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한 그를 다른 선교사들과 인디언들이 열심히 위로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 젊은 선교사는 병으로 몸져눕고 본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오지까지 왔지만, 보상은커녕 아들과 건강만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가?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가? 당시 필립 얀시는 그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유명한 신유은사자인 캐서린 쿨만의 집회에 참여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나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들것에 실려 온 한 남자에게 일어난 신유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내과 의사이며, 폐암에 걸려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걸어 본다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무대 위를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필립 얀시의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필립 얀시는 그 의사를 찾아 인터뷰를 하려고 일주일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부인을 통해 “제 남편은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말에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과 절망감이 몰려 왔습니다. 필립 얀시가 신앙의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훗날 인도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폴 브랜트 박사를 만나, 생명 자체가 기적이며,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고통처럼 큰 선물도 없다는 설명을 듣고 그는 신앙을 회복합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의 치유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시는 분, 유일한 구원자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선하신 주님의 뭔가 석연치 않은 이 말씀은, 우리를 더 깊은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기적이란, 자연 현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일을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기적을 바라고, 또한 기적을 체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탄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 체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들의 단세포적인 경박성을, 또한 우리들이 얼마나 겉껍데기에 매달리고 있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과 인간을 무無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창조가 곧 기적입니다. 왜 만물과 우리들을 창조하셨을까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사랑의 산물입니다. 최고의 기적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이는 치유보다 더 큰 가치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 20:29)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맥박을 느낄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에 감사하기로 합시다. 하나님의 선물인 이 몸을 열심히 움직여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 흉흉한 소식에 주눅 든 이웃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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