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하나님의 일, 곧 내 일

새벽지기1 2016. 3. 18. 07:45

미국에는 ‘캐딜룩’이라는 자동차가 있는데, 겉껍데기는 ‘캐딜락’이지만 정체불명의 중고 엔진을 달았습니다. 외양이 아무리 아름답게 잘 빠졌어도 자동차의 본질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사고와 불행을 부르는 자동차가 되고 맙니다.

   

타락이란, 비본질이 본질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돈, 외모, 권력, 행복, 모두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기복신앙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현세의 부귀영화, 무병장수, 만사형통에 초점을 맞추므로, 가장 타락한 종교행태입니다. 종교적인 타락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하고 있다는 맹신 때문입니다. 맹신은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망의 벼랑 끝에 서도 자신이 죽을 줄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비본질을 쫓는 기복신앙자들의 행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삼십 팔 년 된 환자를 고쳐주신 후입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요 5:16)

   

왜 아픈 사람을 살려준 좋은 일이 핍박 받는 계기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율법 때문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프랑스 신학자 앙드레가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들을 동물성으로부터 인간성으로 끌어 올린다.” 아무리 포악한 동물이라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춥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창고에 가득 쌓고도 더 쌓으려고 하며, 일용할 양식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최악의 동물입니다. 그 동물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거나, 느끼거나, 원하는 것 너머를 보게 하고, 가게하고, 살게 합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 8-11)

   

하나님과 더불어, 식구나 다른 이웃들, 심지어는 종이나 가축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쉬는 복된 날이 안식일입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시’(‘밝게 빛나다, 따뜻하다. 새롭게 하다’)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 어두움과 근심을 털어내고 다시금 하나님의 빛으로 밝게, 따뜻하게, 새롭게 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되어도 하나님 만날 생각은 없고, 자신들이 만든 270여 개의 안식일 법을 지켜서 하나님 눈에 들어 복을 받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일념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법을 지키느라, 또 남들을 감시하느라, 안식일은 가장 피곤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삼켜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일을 망친 주범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주일은 숙제점검과 새 숙제 부과로 괴로운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이셨을까요? 흔히 종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입니다. 종교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는 것은 예수님은 종교적이 아니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이 아니셨으니 당연히 영적이셨습니다.

   

SBNR족이 있는데, SBNR은 ‘Spiritual but not Religious’(‘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 아닌’)입니다. SBNR족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종교행위보다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긍휼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전무합니다.(딤후 3:5) 반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을 담아놓은 것’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에 복을 담아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 1:27-28) 둘째, 일곱째 날에 복을 담아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일곱 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 2:3) 이 두 가지가 창조의 핵심입니다.

   

높은 지위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한 사람, 잘 생긴 외모와 뛰어난 머리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복된 존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교회의 본질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닮아 가노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이란 대단히 단순합니다. 히브리어 ‘사바트’‘멈추다. 쉬다’는 뜻입니다. 즉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 안식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품 안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내 안에서 이 둘이 합쳐질 때 드디어 내 눈 앞에 에덴동산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복된 존재(하나님의 형상) + 복된 시간(안식일) = 에덴동산(생명, 기쁨)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중 하나는 올바른 ‘하나님의 안식’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새로운 안식일 곧 주일을 새롭게 제정해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겨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7)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가는 우리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디서나 에덴의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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