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은 가톨릭 신부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에, 베스트셀러 작가요 유명 강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신지체아들의 공동체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갑니다. 그런 결단을 하게 된 이유는, 그곳에 사는 수 모스텔러라는 할머니에 의해서입니다. 그곳에 며칠 머무르던 헨리 나우웬에게 그녀가 말 합니다. “서로 낯을 익힌 뒤부터 줄곧 지켜봤는데, 당신은 사랑에 목마른 눈치가 역력합니다. 사방팔방 관심과 인정, 지지를 구걸했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진짜 소명을 추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헨리 나우웬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곳에서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다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관심, 인정, 지지, 이득 등등. 하나님을 믿는 이유도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사렛지방에는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저 몇 몇 사람을 고치셨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것도 두어 번 시행하셨을 뿐입니다. 왜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뭔가를 얻으려고 몰려 온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a) 그런데 사람들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이 말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영생하도록 있는 그런 신통방통한 양식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지지와 인정, 행복과 건강, 마음의 평화나 만사형통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목사들은, 하나님께 원하는 모든 것들을 구하라고, 얻을 때까지 두드리라고 독려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고, 얻지 못하는 이유는 정성과 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그런 것들은 한 마디로 ‘썩을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인가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그런 의도를 버리지 않으면, 병든 나는 더욱 깊은 병에 빠지고, 복음을 상품으로, 목회자를 세일즈 사장으로, 교인들을 교회의 영업사원으로 전락시킵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열심히 행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요 6:51)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5-57) 자기 살과 피를 다른 사람의 양식으로 주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래.” “심히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그리고는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자’는 열 두 사도 외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말씀은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뜻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사 31:4)에서 ‘묵상하다’와 ‘으르렁거리다’의 히브리어는 둘 다 ‘하가’입니다. 묵상하는 것과 으르렁거리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개가 살점 붙은 뼈다귀를 먹을 때의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너무나 맛이 있어 앞발로 뼈다귀를 움켜쥐고는 낮고 작은 소리로 으르렁거립니다. 그것이 바로 ‘하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달고 맛이 있어, 으르렁거리고 탐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 입니다”(렘 15:16) 다윗이 노래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는 것,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는 것, 모두 다 똑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는 말입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데비 맥컴버는 우연히 한 기독교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 처음으로 성경책을 접하게 됩니다. 그 때가 20대 초반. 흥미를 느끼고 읽어가다가 하나님 말씀의 풍요로움과 그 짜임새에 탄복하게 됩니다. 그녀의 잠자던 문학적 소질이 깨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현재 그녀는 124권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7,000만 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며 전 세계에 독자층을 갖고 있습니다.
파산과 이혼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로리 베스 존스는 오직 성경책 한 권을 들고 콜로라도 산속에 칩거합니다. 그러기를 몇 년, 심신이 회복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결심하며 다시 시작합니다. 현재 존스 그룹의 회장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리더로 살아갑니다.
일본 최고의 제약회사 가네보 그룹의 회장 미타니 야스토는 평범한 평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크리스챤으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정직과 성실함으로 회장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가네보 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들 모두 말씀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고, 그 분의 살과 피가 자신의 몸과 영혼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결과는 세상에서의 대성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세상의 성공은 그저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동행 자체가 가장 감사하며 즐겁다는 것을.
“너희도 가려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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