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 것을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각으로는 변화를 원합니다. 마음으로는 변화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는 반드시 수고와 희생이 뒤 따라야 하고, 또 익숙해지는 데까지 힘들고 불편하기에, 새로운 변화에 대해 잘 도전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 입니다.
가정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사회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과 같이 살겠습니까?” 그랫더니 대부분의 주부들이 현재의 남편과는 절대로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당황한 사회자가 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의 남편과 다시 살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사회자는 진실한 사랑을 하며 사는 부부를 만났다고 하면서,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대고 다시 묻습니다. “할머니, 정말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이 남편분과 살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럼 물론이지요. 우리 남편을 지금까지 길들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지금의 남편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아까워서 다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도전하고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고 자신의 삶에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 생각처럼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눅 9:6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물론 이 말씀속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란, 편안한 현실에 매여 있기 보다는 때로는 편안함을 깨고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그 어떤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함을 뜻하는 것 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 모습은 어떻습니까? 편안한 현실에 자리에만 계속 머물러 앉아 있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거대한 장벽 앞에 믿음으로 도전하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소년 다윗입니다. 사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교회에 한 번도 다닌 적 없는 사람들,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군대가 ‘엘라’ 평지에 진을 치고,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서 지휘를 하고 있었지만, 전세는 이스라엘에게 너무나도 불리한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17장4-7절에 기록된 골리앗의 신체적 특징을 보면, 그의 신장은 무려 6규빗 한 뼘 입니다. 한 규빗은 보통 사람 손 끝에서 팔꿈치까지로 대략 45cm정도 됩니다. 한 뼘은 약 23 cm입니다. 그러면 골리앗의 키는 대략 3m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그는 놋 오천 세겔 (한 세겔11.4g X 5,000) 무게만 약 57kg 정도되는 갑옷을 걸쳤습니다. 또 창날의 무게만 육백세겔 (11.4 X 600=6.84/ 약7kg) 이나 되는 창을 자유롭게 다루며, 그의 우렁찬 고함소리는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그는 그 큰 목소리로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와서 40일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조롱하며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나를 쳐죽여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쳐죽여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서 우리를 섬겨야 한다.” (삼상 17:9)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도 이스라엘의 군대 안에는 용기 있게 골리앗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라의 지도자였던 사울왕과 군대 장군들도 침묵속에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이제는 자신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감도 잃어버린채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인 골리앗에 서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속에서 골리앗 같은 인생의 큰 장애물 앞에서 서 있는 3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장애물 앞에 쉽게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17:25절을 보면, 사울왕은 골리앗을 제거하는 자에게 엄청난 포상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기 딸을 주어 사위를 삼으며, 세금도 면제해 주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이 어려움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골리앗’ 이라는 장애물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두려움에 떨고만 있는 사람들 입니다.
둘째로, 남을 비판하는 사람 입니다.
다시말해 자기는 도전을 하지도 못하면서, 도전하는 다른 사람의 용기를 꺾는 사람입니다. 바로 다윗의 맏형 ‘엘리압’과 같은 사람입니다. 사실, 다윗은 전쟁을 하기 위해 전쟁터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형들에게 전쟁터에서 먹을 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고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마음속에 분노가 솟구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 입니까?” (삼상17: 26)
그런데 이 분노에 찬 말을 듣고 있던 맏형 ‘엘리압’은 오히려 다윗을 크게 비난합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 (삼상 17:28) 한마디로 잘난 체 하지 말고, 네 주제나 파악 하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당장 꺼지라’ 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는 감히 도전을 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기를 꺾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 입니다.
모든 사람이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상황 속에서 소년 다윗이 도전자로 나섭니다. 그는 고작 심부름꾼으로 전쟁터에 나온 소년이었습니다. 아직 20살이 채 되지도 않아 전쟁에 징집되지도 않은 미숙아였습니다. 그는 전투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가 경험했던 유일한 전투란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물 매질로 사자나 곰을 쫓은 경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룩한 분노 앞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칠 때 사용하던 막대기 하나와 시냇가에서 주운 다섯 개의 돌맹이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믿음으로 도전하며 나갔습니다. 그는 늘 양들을 잡아 죽이는 맹수들에게 물매를 던져 싸웠던 것처럼,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양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는 골리앗을 향해 힘껏 물매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이마에 다윗의 물맷돌이 깊이 박히게 되었을 때, 그 충격으로 골리앗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이제 장수가 아니라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 앞으로 가서 장수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곰곰히 묵상해 보면, 똑같은 상황속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행동이 나타났던 이유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군인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움’속에 떨게 된 이유를 두 가지 동사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듣다’ 와 ‘보다’ 입니다.
11절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였다.”
24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보고 무서워하며, 모두 그 사람 앞에서 달아났다.”
그들은 골리앗의 큰 목소리를 귀로 듣고 낙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엄청난 외모를 눈으로 보고 절망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실 우리도 인생의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좌절합니까? 또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그저 눈으로 한번 힐끗 보고 나서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고 스스로 좌절하고 도망칠 궁리를 합니까? 이것이 문제의 상황 앞에서 ‘두려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며, 또 ‘골리앗’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다윗을 달랐습니다. 똑 같이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또 주눅이 들만큼의 엄청나 외모를 보았음에도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골리앗에게 도전한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본문 46-47절 입니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성경은 분명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다윗이 골리앗에게 도전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블레셋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증거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골리앗 앞에서 믿음이 부족하여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군인들에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 같은 상황속에서, 서로 다른 행동이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믿음의 차이 입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믿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의로운 분노가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있다. 승리하는 것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달려있다.’ 라는 자기 안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그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아무리 강하고, 블레셋이 클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고, 그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손수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가장 큰 믿음의 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교회를 섬기시는 어느 교우 분의 이야기 입니다. 이 분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아주 오랫동안 정직하게 또 부지런하게 자신의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미국 경제의 불황으로 오랫동안 운영해 오던 자신의 사업장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실망스러워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김영봉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용기를 얻어, 그 동안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40일간의 작정 기도를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작정 기도라 어색했지만, 하루 하루 당면한 문제들을 놓고 부부가 함께 구체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문제가 잘 해결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잘 풀리지 않는 것 입니다. 나름대로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한 노하우가 있고, 손재주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얻을 수가 없었고, 또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해도, 주변 사람들의 시기심 때문에 계속해서 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주인이 새로운 가게를 OPEN한다고 일을 시키는데, 자기 경험으로 보아, 아무래도 제 날짜에 사업장을 OPEN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음 가운데, ‘이것을 네 사업장처럼 생각하고 네가 좀 도와 줄 수는 없겠니’ 라고 부담감을 주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업장을 OPEN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한 때는 준비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당장 그만 두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결국 그 사업장은 이 분의 노력으로 제 날짜에 OPEN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업장이 OPEN 한지 두달 만에, 기적적으로 이 두 분의 사업장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도록 자신을 시기한 사람들, 자신이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사람들, 또 혼자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사업장을 OPEN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은 모두 하나님의 시험이었고,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드렸던 그 기도의 제목들이 모두 다 응답이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교우님의 간증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런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목사님, 이 사업장은 저희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희의 능력으로는 이 사업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업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절망적인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 분의 위로함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알면서도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변화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이 보장되어야만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장된 후에 시작하는 것은 값진 도전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은 편안함을 깨는 것 입니다. 익숙하고 편안했던 고향을 믿음으로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변화되는 것이 불편하고, 눈에 확실한 그 무엇이 보이지 않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싸움을 싸웠습니다. 만일 다윗이 골리앗처럼 거대한 장군이었고, 골리앗이 다윗처럼 연약한 소년이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슨 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감동하고 감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연약한 다윗이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승리는 편안함의 한계를 넘어선 믿음의 싸움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월22일이 되면, 사순절 기도회가 시작 됩니다. 저는 이번 사순절 기간동안에 많은 분들이 ‘새벽기도회’나 ‘기도 나눔’의 그룹에 참석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다윗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40일동안 바쁜 시간을 내어 ‘새벽기도회’나 ‘기도 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 가운데 결단하고, 40일간의 사순절 기도 여행 (Lenten Journey for Prayerful Life)에
도전해 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기쁨을 맛보시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매일 선포되는 말씀과 바른 기도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은 눈에 보이고, 들리는 현상 때문에 쉽게 좌절하거나 낙심되어 두려움속에 살지 않는 믿음의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또한 기원합니다.
주님,
어렵고, 힘들지만, 지금의 편안함의 자리를 깨고,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진실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을 누리게 하시며,
순종하는 마음 가운데,
우리 안에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하게 회복되게 하시어
매일 매일의 삶이 ‘두려움’ 이 아니라 ‘평안함’ 가운데 거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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