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났다는 바울의 진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즉 하나님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바울의 예수 경험은 곧 하나님 경험이다. 바울만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거론되는 제자들과 지도자들도 역시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예수가 산헤드린으로부터 받은 평가는 신성 모독자라는 것이다. 분명히 사람이었던 예수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 제자들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데에는 다 근거가 있다. 바울의 입장에서만 말한다면 근거는 예수를 통해서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어 복음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성경이 로마서다.
롬 6:11절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다음은 롬 6:22절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 주이신 예수 ‘안’에 영생이 있다고 한다. 바울 신앙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 ‘안’에 있다는 식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제로 들어갈 수는 없다. 예수의 운명과 하나 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예수의 운명과 하나가 된다는 말도 여전히 관념적으로 들린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주술적인 능력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구원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이다.
바울은 예수를 관념적으로, 또는 이념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믿음’만 강조하지 않았다. 그에게 예수가 중요했다. 예수는 생명의 궁극적인 현실성(reality)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해서 그는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걸 예배 의식문으로 바꾸면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예수를 향하여!’이다. 바울은 예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구원을 선포했다. 예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하게 죽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예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예수와의 관계다.
오늘날 전업 목사로 사는 우리는 예수와 어떤 관계에서 목회 업무를 감당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인가? 그걸 다른 사람들이,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할 수 있는 목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대답을 하는 목사는 둘 중의 하나다. 인간과 그 실존과 역사와 세계의 아득한 깊이에 대해서 아는 게 없거나 관심이 없으면서 순전히 교회 메커니즘에 숙달된 사람이거나 실제로 신학과 영성에서 고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말할 자신이 없다. 그걸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독교 진리도 종말로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것은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하다. 그걸 자랑하듯이 떠벌릴 수는 없다. 다만 들은풍월로가 아니라 정직하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면 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목사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관련한 질문을 영적인 화두로 삼는다는 것이다. 목사 공부를 주제로 하는 지금의 글쓰기도 이런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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