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상 간섭(요나서) / 신권인 목사

새벽지기1 2026. 5. 16. 07:39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상 간섭(요나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한다. 니느웨는 역사적 감정의 골이 사그라지지 않는 철천지원수 같은 나라였기에,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차라리 죽음조차 담보할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언정,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면 저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은 반드시 용서하실 것이기에 그것만큼은 눈꼴사나워서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1. 도망치는 선지자, 추격하시는 하나님

그는 침묵한 채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저들이 얼마나 미웠으면 그 당시 세상 끝이라 여겨지는 가장 먼 곳으로 숨 가쁜 탈주가 계속된다. 그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는 과정을 요나서 기자는 "내려가다" 동사를 3차례 사용하여 요나가 위로부터 내려갈 수 있는 한 가장 낮은 곳인 배 밑창까지 도망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피하고, 일어나고, 도망하고, 내려가고, 만나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오르고(내려가다) 있다.

2. 징계와 사랑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다루시기 위해 다섯 가지를 예비하셨다. 1장에서 대풍, 2장에서 큰 물고기, 3장에서 박 넝쿨, 그리고 4장에서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다. 이는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요나를 다루시고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다. 우리는 그동안 요나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대해왔다. 항상 진주어 하나님이 아닌, 가주어(인물) 중심의 설교로 요나처럼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광풍을 만났고,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삼킴을 당했으니 우리는 요나처럼 불순종하여 고난당하지 말고, 순종하여 광명 찾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자는 식의 설교가 만연했다. 그래서 요나가 아닌, "요~ 나"가 문제라고 겸손을 떨었다. 과연 그러한가? 정녕 요나가 망망대해 바다에 던져지고, 큰 풍랑을 만나고, 큰 물고기 뱃속에 삼킴을 당한 사건을 요나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요나의 처절한 회개로 마무리 된 사건인가? 

3. 고난의 심연, 가장 안전한 지성소

우리는 종종 권선징악의 하나님, 인과응보의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만 인식하고 하나님의 심정과 속성과 방법에 대하여는 도무지 생각해보지도 못하는 잘못된 시각이 만연해있다. 예수님께서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40)고 말씀하시고,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이것이 과연 징계와 심판의 언어로만 재단할 수 있는가?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속사의 거대한 표적을 깨닫지 못하는 악한 세대와 어두움에 처한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였던 것이다.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가 만난 풍랑은 죄의 대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로만 알았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도, 그가 제비 뽑히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징계 외에는 단 한 뼘도 다르게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사랑하셔서 더 많은 시간, 방황하지 않도록 찾아오셨고, 다시금 사명을 회복케 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의 삶에도 그 물고기 뱃속이 있었는데, 어렵고 힘든 것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손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일 수 있다.

4. 폭풍 속에서 드리는 예배의 자리

바다가 하나님의 품이었고, 풍랑은 요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었고, 큰 물고기는 하나님이 보내신 가장 안전하고 듬직한 잠수함이었으며, 그 물고기 뱃속은 정형화된 성전은 없었으나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절절히 경험하는 하나님의 지성소였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고 회개하고 감사의 찬미를 드렸다는 사실을 읽어낼 때 우리는 진한 감동과 은혜를 누리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대할 때, 본문에서 합당한 추론과 상상조차 금기시하고 풍성한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사사로이 성경을 해석하므로 알레고리에 빠지고 지나치게 성경을 희화화한다거나 불필요한 생각들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물고기가 요동을 치고 공중으로 튀어 올라 회전을 하고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물고기 뱃속에 갇혀있는 요나는 멀미나 현기증이라도 느꼈을지도 모를 만큼, 결코 평온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심히 배고플 때, 심해에서 빨려 들어오는 신선한 생선 횟감을 먹었을 법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들을 그렇게 공급하시며, 생명을 보존케 하셨는지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어느 seafood restaurant에서도 볼 수 없고, 먹을 수 없었던 진귀한 것들을 요나가 보았고,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 입각한 추론은 결코 알레고리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해석의 풍성함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은 그곳이 배 안이든, 물고기 뱃속이든 감옥이든, 다니엘의 사자 굴이든 최고의 만찬의 자리이며, 최고의 영적 골방이고 이삭의 번제 단이고, 십자가의 도상이고, 성전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풍랑을 던지실까? 우리는 불충하고 늘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은 왜 당신을 거역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치닫고 죽음의 길로 줄행랑치는 우리들을 기어이 찾아오셔서 그 길을 멈추게 하시고 붙잡아 주시려하는가? 

5. 복 주시는 하나님

문제의 해결을 가지고 달려오시는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의 삶에 직접 관여하시고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던져진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100% 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우리가 세상 끝까지 버티고 도망할지라도 도리어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상 끝까지라도 기어이 찾아오셔서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다. 선지자 요나의 평생 간증거리 중에서 으뜸은 분명 본문 사건일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자국인 이상으로 가장 존경하며, 평생을 고마워하며 국보급 이상으로 기리는 사람은 단연코 요나 선지자였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시고 우리를 풍랑으로 부르시고 나를 제비 뽑히게 하신다. 숱한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풍랑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풍랑의 크기만큼, 아니 더 큰 사랑으로 나를 항상 간섭하신다. 또한 풍랑을 던지심으로 배를 흔들고, 온 우주를 흔들어 내 아들 내놓으라고 큰 물고기로 보호하시고, 물고기 속에 안겨주시고, 물고기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이라 믿는다. 언제라도 부르면 응답하시고 최상의 것으로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꺼내주시고 살려주시려 언제나 우리 곁에 임재하시는 분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섭리의 역사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가 풍랑에 던짐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랑의 추적을 계속하시겠는가? 죽음의 배를 타고 가는 아들을 위해 누가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하나님은 요나를 죽이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품으로 보호하시려는 특별한 조처였다. 하나님은 한 손엔 풍랑으로, 또 한 손엔 큰 물고기로 요나를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심정, 그분의 섭리의 역사는 언제나 감사와 감탄만 나오게 한다. 이와 같이 믿음은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을 하나님의 품에 맡기는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의 삶에 갖가지 시련이 찾아들고 물질의 풍랑, 건강의 풍랑이 닥쳐와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시고 간섭하시는 분임을 신뢰해야한다. 요나는 결국 죽었는가? 아니다. 100% 죽을 줄만 알았는데, 100% 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요나는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죄와 허물은 용서받을 죄요 회개할 죄일지언정 저주받거나 구원에서 탈락하는 심판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만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아우성치고 원망하던 선원들도 살리게 된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가졌던 억울한 마음과 원망과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고 선지자적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 우리의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품에 우리의 인생을 던져야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고 감사할 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