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위로하라(4)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4. 5. 06:44

위로하라(4)

 

위로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말이 자칫 사이비 위로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이비 위로는 목마른 사람에게 설탕물이나 바닷물을 주는 거와 같다. 당장은 해갈이 되는 거 같지만 다시 목마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갈증을 더 가중시키고 더 나아가서 영혼의 건강을 파괴한다.

 

유럽 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독교 신앙에 물들면 역사를 현실적으로 뚫어보지 못하고 숙명주의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청교도들은 흑인노예를 동력으로 미국을 발전시켰다. 설교자들은 노예들에게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설교했다. 거짓 위로다.

 

한국교회의 특징인 기복주의 신앙도 거짓 위로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주장을 설교자들이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불행이 피해가지 않는다. 불행을 당한 신자들에게는 두 가지로 처방을 내린다. 아직 기도가 부족하다는 게 하나이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해결되는 게 또 하나다. 거짓 위로에 신자들은 속는다. 속으면서도 그것마저 없으면 영혼이 허전하니까 어쩔 수 없이 매달린다. 그런 신자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종교지도자는 기생충이나 다를 게 없다.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절 신앙은 혹시 거짓 위로가 아닐까? 죽어 천당 간다는 말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예민한 문제다. 대림절 신앙이 오늘의 현실을 변혁해내는 영적 동력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신학적 수사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거짓 위로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