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하나님
여호수아와 백성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과정이 일단락되면서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하나님을 향한 결단을 다시 확인한 뒤에 백성들을 위해서 언약을 맺었다. 그 언약의 표시로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다고 한다. 율례와 법도는 율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문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문자로 된 율법은 고대 이스라엘이 역사 과정에서 확인한 최선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압축은 십계명이다.
율법은 시대적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자식이 어렸을 때는 9시까지 집에 들어오는 게 당연하지만 큰 다음에는 9시로 강제할 수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된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해나가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그걸 문자적으로 고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수와 초기 기독교 당시에 율법 중심의 유대교는 정점을 찍었다. 율법 학자들에 따라서 입장에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소위 율법주의에 머물렀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고대 유대인들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내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면 재앙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생이 잘 풀리느냐의 여부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인생이 잘 풀려도 영혼이 궁핍한 사람이 있고, 인생이 잘 안 풀려도 영혼이 풍요로운 사람이 있다. 자주 말한 거지만, 여기서 영혼은 생명의 가장 깊은 차원을 가리킨다. 죄와 죽음을 직면하는 차원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붙드는 사람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다. 그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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