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시원적 깊이
제2 이사야는 자신의 소명을 ‘하나님이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신 것’이라고 표현했다. 남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저런 표현을 쓴 게 아니다. 설교에서 나는 그것을 가리켜 ‘소명의 시원적 깊이’라고 말했다.
소명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능력으로 말이다. 대개는 전문 사역자가 되는 것으로 여긴다. 신대원 구술시험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당신은 소명을 받았습니까?’다.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앙적인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건 말로 대답할 수 없다. 소명이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고,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소명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소명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다. 세례를 받았다는 건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원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보통 삶을 분절해서 이해한다. 인생을 토막으로 나눈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일과 업적과 관계를 독립된 것으로 여긴다. 생각을 좀더 넓혀보라. 지금의 나는 다른 것들과 다 연결되어 있다. 1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5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여기서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소명은 50년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이사야가 태 운운한 것은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그 순간이 소명의 절정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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