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의 진정한 의미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처음이란 말이 앞에 붙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특별해진다. 첫날, 첫사랑, 첫눈 얼마나 싱그러운 단어들인가! 아기가 눈을 뜨면서 세상에 처음 탄생할 때보다 더한 처음의 순간이 있을까?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타나는 한 구절을 옮겨보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이보다 강렬한 처음의 느낌은 무엇으로 대체 가능할까?
정현종 시인의 "아침"이란 시에 "아침에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이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처음처럼" 시작된 하루이며 기적이며 선물이다.
나도 처음 것의 순수함과 신선함을 날마다 누리고 싶다. 첫 시작, 첫 경험이라는 낯섦의 의미를 느끼고 싶다. 이 처음에는 비교와 경쟁이 없다. 어떤 기준도 미리 설정 되어 있지 않다. 처음 시작 그 자체가 첫 획을 긋는 기준이 되고 관행과 관습이 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을 좋아하고 지금의 내 마음이 '처음처럼'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로움
성경에 나타난 새로움에 대한 두 개의 단어가 있다. '네오스'와 '카이노스'다. 네오스는 시간이 만든 새로움이고, 카이노스는 보다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하나님 안에서 열리는 새로움이다. 이는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신비 속에서 잉태된 영원한 새로움이다.
성경에는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전1:1)고 전제하면서 다만 보다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새것에 대한 말씀을 언급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창1:1). 이 말씀보다 더 원초적인 처음이 어디 있는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보다 더 새로운 신세계가 어디 있을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 이보다 더한 처음의 실체, 새것의 실체, 영원의 실체이신 그분보다 더한 이가 어디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보증금이요, 첫 열매다(계14:4~5). 또한 '하나님께 드릴 처음 것의 소산으로서의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출현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생명 공동체가 이 땅에 연한 순처럼 피어나는 어린 새싹과도 같은 교회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영원한 소년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모든 심령들은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처음 익은 열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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