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시23:6) / 신권인 목사

새벽지기1 2026. 1. 17. 05:14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시23:6)

시편 23:6절 '나를 따르리니'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radaph)로서 구약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적대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원수가 추격하다", "군대가 쫓다", "사냥꾼이 놓치지 않고 쫓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늘 두려움의 언어였다. 특히 시편에서 추격하다는 말은 거의 예외 없이 원수의 몫이었고 원수의 행위를 묘사하는 표현이었다. 다윗은 수없이 고백했다. 원수들이 나를 쫓고, 내 생명을 노리며, 숨 돌릴 틈 없이 추격해온다고 절박한 심정의 탄식과 고백의 시들로 절절하다. 

그런데 시편 23편에서 뜻밖의 주어를 만난다. "진실로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완전한 전복과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단어가 전혀 새롭게 '선하심과 인애'의 주어로 전복적으로 사용된 것이 시편 23:6이다. 즉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는 셈이다. "원래 내 인생을 쫓아오는 것은 불행이나 저주나 심판인데, 그 자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사랑)이 나를 추격한다." 

나는 은혜를 쫓아다니는 자가 아니라, 은혜에 쫓기는 자다. 내가 길을 잃고 어두운 골짜기로 내려갈 때에도 하나님은 등을 돌리시가나 멀찍이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더 집요하게, 더 깊이 나를 향해 다가오신다. 시편 23편의 평안은 결코 고요함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은혜의 추격에서 오는 평안이다. 도망칠 수 없을 만큼 끈질기게 나를 따라오는 하나님의 선하심 앞에서 나는 마침내 멈춰 서서 고백하게 된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1. "나를 따르리니"의 영어 단어 'pursue'와 'Follow’ 

우선 "나를 따르리니"에서 'Follow'가 주는 위험은 인간 중심적으로 읽힐 수가 있다. Follow는 내가 앞서 걷고, 내가 주님과 잘 동행하면 선하심과 사랑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느낌으로 이것은 은근히 조건적 은혜, 행위 이후의 보상 구조로 읽힐 위험이 있다. 그러나 'Pursue'는 "네가 길을 벗어나도, 네가 등을 돌려도, 네가 양처럼 도망쳐도 사랑이 너를 놓치지 않고, 사랑은 방향을 바꿔 끝까지 쫓아온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주고, 전적 은혜를 찬양케 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방향 전환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원어의 신학적 충격을 훨씬 더 잘 보존한다.

2. 도망치는 신앙과 추격하는 은혜

성경의 인간은 결코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담은 숨었고, 요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고, 베드로는 부인했고,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흩어졌다. 이런 인간에게 follow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를 살린 것은 언제나 '뒤따라옴'이 아니라 '붙잡힘'이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전에 이미 붙잡힌 자들이다." Pursue는 바로 이 붙잡힘의 신학, 곧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의 언어이다.

죽이려는 추격에서 살리는 추격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따른다는 사냥 이미지는 더욱 급진적으로 전복된다. 사냥꾼은 놓치지 않고 죽이기 위해 추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추격은 파괴가 아니라 구원을 목표로 한다. 이는 복음의 핵심 구조와 닮아 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추격하지만, 은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추격한다. 바울의 언어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빌3:12) 고백한다. 여기서도 주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3. 결론

시편 23편의 마지막 고백은 조용한 산책이 아니라, "나는 결국 붙잡힐 것이다." "사랑이 나보다 더 집요하다."라는 담대한 신앙 선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 걷기 때문에 따라오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도망쳐도 방향을 바꿔 끝까지 쫓아오는 사랑이다.

내 인생에 나를 추격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과 질병의 문제.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나 나를 추격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뚫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추격하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라는 고백 뒤에, 때로는 "여호와는 나의 사냥꾼이시니"(The Lord is my hunter), 또는 "여호와는 나를 추격하시는 분"(The Lord is my pursuer)이라고 고백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