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속상해하는 자녀의 모습이 있다면 가르쳐줬는데 따르지 않을 때입니다. 주님은 듣고 행하지 않는 신앙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흙으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충격에 무너지고 맙니다. 귀만 큰 신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자녀들이 세상의 풍파에 요동하지 않고 튼튼하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들은대로 믿고 행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대한 지식과 확신과 일상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견고해야 세속의 유혹과 미혹과 풍파를 견딜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해주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맹인을 인도하는 자는 눈이 떠 있어야 합니다.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않습니다. 온전한 제자는 선생과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형제를 비판하려거든 우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라고 합니다.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 형제의 눈에 티끌을 문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고 공의롭지 못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거룩하고 공의로워야 한다고 말할 때 그 힘은 매우 빈약해집니다. 주님은 이러한 모습을 외식이라고 말합니다. 외식을 벗어 던져야 영향력이 있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선한 마음에서 선을 냅니다. 나쁜 열매, 악한 말도 결과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압니다.
주님은 주여주여 라고 말하면서 어찌하여 내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외치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 되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참 믿음은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말은 열매로 인정받습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실제로 기도가 따라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저 기도해요라고 쏘아붙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믿음은 처음부터 거대한 담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진 자에게 순교를 명령하지 않습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라고 명령합니다. 땅을 깊이 파고 주초를 세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거대한 담론도 차차 감당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말씀을 듣고, 마음게 새기고 일상에서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분투하는 일입니다. 이때 외식과의 싸움을 이겨야 합니다. 그 일은 매일 주님을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매일 번제를 드렸던 것은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신자로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고 외식과의 싸움을 이기고 선한 열매를 맺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듣고 행하는 삶을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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