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에서는 누구든지 영적 침체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신앙의 길이 변화무쌍합니다. 세례 요한이 보여주는 모습이 때로는 큰 위로를 줍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자신은 감옥에 있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예수님의 모습에는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자신의 상황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영적침체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에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각을 알고 싶었습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 요한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일을 알려줍니다(22절). 그러면서 나로 말미암아 실족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말씀을 듣고 회복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의 자리를 감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보내어 길을 예비할 그 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말3:1). 그러면서 세례 요한은 선지자들 중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합니다. 복음과 함께 살아가는 신자들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말씀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 소견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평가하면서 이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비유합니다. 아이들은 오직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합니다. 오직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의 모습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금식하면 귀신 들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먹고 마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입니다.
정직한 말을 하여도 곧이 듣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편견에 따라 행동합니다. 성경으로 교정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경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를 떠나 교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자녀로 말미암아 옳다함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택함받은 자녀는 성경이 계시하는대로 예수님을 믿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신념입니다. 그러나 주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세상이 혼란할 때 믿음을 지키고 성찰하지 않으면 영적인 침체가 올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지킨 주의 자녀는 계시된 말씀의 안경을 통하여 자신과 교회와 세상과 마지막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계시된 말씀을 따라 주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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