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기자는 로고스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여기서 빛은 물리적인 빛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메타포(은유)다.
빛은 세계를 밝혀서 사물을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요한복음의 이런 진술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과 일치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다.
문제는 이런 사실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신들의 삶과 실질적으로 일치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생명의 신비를 만나는 게 기독교 영성이다.
세상의 틀에 길들여지지 않고 성서가 가리키는 그 세계를 직면하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지적 수준의 고하에 상관없이 기독교 영성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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