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받았습니까?
(사도행전 9:15-19)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스데반 집사의 죽음 이후, 바울은 다메섹에 가서 신자들을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 박해의 현장에서 바울은 빛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시력을 잃은 채로 다메섹의 한 집에 들어가 있을 때 아나니아 선지자가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었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 택한 하나님의 그릇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아나니아가 바울을 용납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바울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했던 첫마디가 바로 “형제 사울아!”였습니다. 바울은 이때 자신을 부르던 아나니아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자기 같은 사람에게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이 그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나중에 바울은 자신의 회심 사건을 회고할 때 이 일을 말합니다. 아나니아가 자신을 부르던 호칭인 “형제 사울아!”라는 표현을 빠뜨리지 않고 말합니다(행 22:12하-13).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자신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던 사람을 용납하며 “형제”라고 불러준 아나니아를 바울은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이후 고린도교회 안에서 우상의 제물로 인한 갈등이 있었을 때도 결국 바울은 형제 사랑의 논리로 문제를 풀어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고전 10:26). 그런데 만약에 자신이 제물로 바친 그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형제 한 사람을 실족케 한다면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아도 좋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형제 사랑을 강조한 것은 바로 그가 아나니아에게 배웠던 형제 사랑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형제 사랑을 체험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지 깨닫고 우상의 음식 먹는 문제에서 몸소 형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아나니아처럼 형제 사랑을 실천하여 크리스천 공동체 안으로 용납해 준 사람이 우리에게도 있습니까?
일하는 사람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나니아 선지자가 바울에게 형제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했던 것처럼 저도 우리 일터에서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주님께 받은 사랑을 보여 주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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