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믿는 사람의 존재 가치(창세기 41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21. 06:06


해설:


두 관리가 감옥에서 나간 후 꽉 찬 2년이 지났을 때, 바로가 꿈을 꿉니다. 저자는 두 개의 꿈을 묘사하면서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바로는, 나일 강 가에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이 나타나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잡아 먹는 꿈을 꾸고는 놀라 깨어납니다. 잠시 후에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이번에는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한 줄기에서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뒤를 이어 야위고 마른 이삭 일곱이 나와서 앞의 이삭을 모두 먹어 버립니다(1-7절). 바로는 범상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마술사들과 현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꿈을 해몽하게 했지만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7절).

그 때에서야 술 맡은 고관이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는 바로에게, 자신과 빵 맡은 고관이 꾼 꿈 이야기와 요셉의 해몽 이야기를 보고합니다(9-13절). 바로는 즉시로 요셉을 궁으로 불렀고, 요셉은 몸단장을 한 다음 바로 앞에 대령합니다(14절). 바로가 그를 부른 이유를 말한 다음(15절) 자신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느냐고 묻자, 요셉은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16절)라고 답합니다. 바로가 두 가지 꿈 이야기를 해 주자(17-24절), 요셉은 두 가지의 꿈은 같은 의미인데, 먼저 칠 년의 풍년이 온 다음 칠 년의 흉년이 온다는 뜻이라고 풀어줍니다(25-31절).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꾸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32절)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33절)을 책임자로 세우고 전국에 관리를 두어서 칠 년 동안 곡물을 저장하여 뒤이어 올 가뭄을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34-36절). 모든 신하들이 요셉의 해몽과 대책을 좋게 여기는 것을 보고(37절) 바로는, 요셉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38절). 바로는 요셉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앉힙니다(39-41절). 그는 요셉에게 옥새 반지를 넘겨 주고 총리에 걸맞는 예우를 해 줍니다(42-43절). 그는 요셉에게 전권을 위임하고(44절) 사브낫바네아라는 이집트 식 이름을 지어 주고 궁정 제사장의 딸과 결혼 시킵니다(45절).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서른 살의 일입니다(46절).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지 십삼 년의 세월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칠 년 동안 풍년이 이어집니다. 그는 각 성읍에 곡물 창고를 세우고 남아 도는 곡물을 저장해 둡니다. 칠 년 동안 쌓인 곡물의 양은 어마어마 했습니다(47-49절). 칠 년이 끝나갈 즈음에 요셉은 두 아들을 얻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50-52절). 칠 년이 지나자 요셉의 예언대로 흉년이 시작됩니다. 이집트 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에 심한 가뭄이 듭니다(53-54절). 백성이 보관하고 있던 곡식이 떨어지자 요셉은 저장해 두었던 곡물을 내어 줍니다. 이집트 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에서도 이집트에 와서 곡물을 사가야 했습니다(55-57절).  

묵상: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힘쓰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사람 자신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복의 근원” 혹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한 가정이,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한 사회가, 또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국가가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때로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무시 당하기도 하고 오해 받기도 하며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알고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복덩이’를 알아 보지 못하고 걷어 차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바로는 그 점에서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감지했습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신은 종족마다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을 믿으라고 요셉에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자신의 신을 믿고 요셉은 그 자신의 신을 믿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요셉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믿는 신의 특별한 보살핌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를 총리로 등용하는 결단력을 발휘합니다. 그로 인해 요셉은 칠 년의 흉년 기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살게 합니다. 바로는 요셉의 행정력으로 인해 국가 재정을 넉넉히 확보하는 복을 누립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의 존재 가치입니다. 

이 세상은 믿는 사람을 때로 무시하고 때로 외면하고 때로 조롱하고 때로 거부하고 때로 박해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결국 덕을 입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1절)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함으로 저자는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때가 있음을 독자에게 암시합니다. 술 맡은 관리가 복직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내 고생이 이제는 끝나는가?” 하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머지 않아 요셉은 기대를 접었을 것이고, 다시 감옥에서의 일상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진실하게, 매일,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거룩한 소명이요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