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천당 방문기(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21. 05:21

천당 방문기(5)

 

    어제에 이어서 밥 이야기를 더 해야겠소. 천당에는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먹을거리가 넘쳐난다오. 아니 이렇게 말해야겠구려. 천당에는 이 땅에 있던 건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새로운 먹을거리요. 그 맛도 처음인 것들이오.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가 참으로 귀했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으니 그 맛을 어떻게 알겠소. 나중에 처음 먹었을 때에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었소. 천당에 있는 먹을거리가 다 그런 줄만 알아두시오. 기대해도 좋소.

 

    그런데 천당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소. 천당의 먹을거리를 먹기 전에 자기가 지상에서 처리하지 못한 잔반(殘飯)을 다 먹어야 한다오. 그거 참 신기한 일이오. 그리고 당연한 일이오. 천당에는 잔반이 개인별로 다 비축되어 있는 거요. 그거 한번 들여다보면 아무리 천당이지만 밥맛이 싹없어지오. 그걸로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봐야 꿀꿀이죽을 먹는 거나 진배가 없소.

 

    그대도 알고 있는 ‘김 사장’의 형편이 어떤 줄 아시오? 내가 천당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돌아올 때 보니, 여전히 50년 쯤 더 먹어야 할 처지였소. 그 친구가 지상에서 너무 헤프게 먹고 살았나 보오. 잔반 창고에 쌓여 있는 찌꺼기 중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대략 5마리 정도 되오. 김치는 통배추로 100 통은 너끈해 보이오. 어쨌든지 그 친구 앞으로 달린 잔반이 컨테이너로 다섯 개 정도 쌓여 있으니, 앞으로 고생 좀 할 거요. 잔반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냉동 창고에 보관해 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돈도 좀 필요할 거고, 보기에 좀 안 됐소이다.

 

    내가 목사래서 그런지 종교 지도자들의 잔반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했소. 담당 관리인에게 확인을 해 보았소. 승려들의 잔반 창고는 아예 없었소. 평소에 양념 하나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요. 가톨릭 신부들의 잔반 창고에는 뭔가 남아 있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았소. 대충 한달 정도면 다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였소. 목사들의 잔반은, 이거 누워서 침을 뱉는 이야기지만,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게 거의 없었소. 아마 10년 정도는 참고 먹어야 할 거요.

 

    그대의 잔반 창고도 슬쩍 들여다보았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그대가 잘 아실 거요. 나중에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내가 함께 먹어드리고 싶소만, 천당에서는 그런 변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하오. (2010년 4월14일, 수요일, 비와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