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3장: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

새벽지기1 2024. 1. 6. 06:46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저자는 지혜의 유익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강조합니다. 먼저,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1절) “인자”(헤세드)와 “진리”(에메트)를 따라 살면(2절) 오래 살면서 평안을 누리고(2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고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4절)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악을 멀리 하며 주님의 인도를 따릅니다(5절, 7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형통하게 하시고(6절) 건강하게 하실 것입니다(8절). 그런 사람은 최선의 것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고(9절) 주님은 그에게 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10절). 

 

지혜의 유익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미숙한 사람들에게는 지혜를 따르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명령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훈계와 책망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11-12절).

 

지혜를 찾고 명철을 얻는 사람은 진실로 복된 사람입니다(13절). 지혜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4-15절). 사람들은 장수와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평안의 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혜의 열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16-17절).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창 3:22)와 같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지혜는 불완전 하나마 그 열매를 맛보게 해 줍니다.  

 

18절과 19절은 지혜가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천지창조의 원리로 삼으셨습니다. 지혜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21절부터 26절까지는 지혜가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27절부터 31절까지에서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가르침을 줍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해를 끼칠 생각은 품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과 맞서지 말고, 악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는 나 혼자만 잘 살려는 자기 중심적 처세술이 아니라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 원리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32절부터 35절에서 저자는 지혜의 유익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주님은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물려 받습니다. 반면, 주님은 교만하여 지혜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악을 일삼는 사람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명하다고 하지만 실은 정말 “미련한 사람”입니다.

 

묵상:

3장에 나오는 지혜의 유익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혜는 내면의 평안과 육체적인 건강과 물질적인 번영을 확보해 주는 능력이며, 인생사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능력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 혹은 번영의 복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힘써온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늘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인생사를 너무 단순화시킨 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도 불행은 찾아옵니다. 질병과 장애를 겪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이 장에 나오는 지혜에 대한 설명에 갸우뚱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18절과 19절에서 말한 것처럼,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로고스”(1:1-5)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정도로 여기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운행과 인생 살이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사는 것은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인류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모두가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절대 다수는 창조 원리를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각자 자신의 소욕대로 살아가기를 택했습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외면한 것입니다. 

 

그 까닭에 지혜를 따라 살기를 힘쓰는 사람도 인생사의 여러 가지 불행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아직 남아 있고, 이 세상에는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은 죄악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은 정직한 사람이 살 곳이요, 흠 없는 사람이 살아 남을 곳”(2:21)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