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문장에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부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고 그의 나라가, 즉 그의 통치가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로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죠. 앞에서 나라는 곧 통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은 통치로서 존재한다는 말이 됩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하나님은 통치이며, 행위이며, 힘입니다. 그는 평화, 정의, 기쁨, 자유라는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나라로서 존재합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의 핵심이라 할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십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거나, 그 하나님을 자기가 직접 만난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바람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까? 물론 바람을 시원하게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 전체는 아닙니다. 바람의 일부를 경험할 수는 있지만 전체를 경험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부분적으로는 경험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를 경험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성서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것처럼 진술된 텍스트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진술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서 진술은 일종의 시(詩)입니다. 시인들은 사물과도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시를 씁니다. “바람이 노래하네.” 이런 시구를 사실에 대한 진술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서 기자들의 진술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높은 영적 경지에서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식했습니다. 그런 인식을 그들은 야훼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이런 설명에 불만스러워할지 모르겠군요. 하나님의 계시인 성서를 인간의 인식론으로 떨어뜨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필자는 그런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필자는 지금 성서를 인간의 인식론적 범주로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와 그것을 알아들어야 할 인간과의 사이에 작동해야 할 인식론적 통로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신비와 계시의 존재론적 능력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합리적 인식론이 파괴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계시를 받은 것처럼 주장하는 여러 이단과 교주들에게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이런 합리적 인식론의 파괴이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하나님 상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요? 대개는 왕처럼, 아버지처럼, 남자처럼 비쳐질 겁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산신령쯤으로 여겨지겠지요. 조금 더 열린 생각을 하는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의 행위가 하나라는 사실은 별로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에 대한 상을 정적인 데서 동적인 데로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게 곧 성서의 하나님 상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역동적인 하나님 이해를 자신의 작은 세계 경험에 한정시켰을 뿐입니다.
이제 열린 눈으로 이 세상에서 생명 사건들이 어떻게 열리는가 보십시오. 그 생명의 힘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고 사는 게 곧 성서적 신앙입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가 곧 당신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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