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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사람이야기33 - 회한과 희망 사이

새벽지기1 2022. 4. 15. 05:14

평안을 빕니다.

무더위에 어떻게 지내세요? 정말 덥지요? 전에는 사무실이 너무 더워 일을 하기 어려우면 가끔은 카페를 찾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저 부채질이나 하면서 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냉방이 잘 된 카페에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몸에 한기가 들어서 컨디션이 나빠지곤 했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차라리 더위에 맞서는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제 입추와 처서 사이를 지나고 있으니 곧 더위도 한풀 꺾일 겁니다. 가끔은 시원한 계곡을 찾아가 탁족을 하면서 계곡을 스치는 바람과도 만나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듣고, 물고기와 희롱도 하고, 한시 몇 편을 낭독하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상의 쳇바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나도 어쩌면 그만큼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먹고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늘 생각만 있을 뿐 결행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요즘도 여전히 많이 아프신가요? 며칠 전에는 온몸이 굳어지면서 정신까지 혼미해져 119에 실려가면서 남편에게 "여보, 이번에는 나 살리지 마"라고 읍소를 했다 하셨지요?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랬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긴 7살부터 열 차례가 넘는 대수술을 받고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까지 겪으셨다니 그럴 만도 합니다. "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하소연했던 요나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하셨지요? 사람이 강철이 아닌 바에야 거듭되는 고통에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죽음에의 유혹은 어쩌면 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존경했던 장 그르니에의 말이 떠오르네요. "실존은 때때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하며(그때 무는 존재를 뒤따르며 그것이 바로 회한이다), 때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간다(그때 무는 존재를 앞서가며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장 그르니에, <존재의 불행>, 권은미 옮김, 문예출판사, 2002년 12월 10일, p.59). 회한과 희망 사이에서 매순간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인가요? 매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너무 아파서 누군가를 붙들고 작은 위로나마 청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저는 조금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메일을 받고는 시몬 베유의 책 <신을 기다리며>를 꺼내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시몬 베유는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그는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강단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장과 농장에서 임금노동자로도 살았습니다. 시몬 베유의 편지와 에세이를 엮어낸 페렝 신부는 서문에서 "그녀는…굶주림, 피로, 매정한 거부, 연속 공정 노동의 압박감, 실업에 대한 불안을 몸소 겪었다. 시몬에게 그것은 일개 '경험'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전적인 육화(肉化)였다"(시몬 베유, <신을 기다리며>, 이세진 옮김, 이제이북스, 2015년 3월 27일, p. 10)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는데, 가족들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운동에 합류하고자 귀국을 시도하다가 런던에서 객사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인간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서 외따로 살아가게끔 예정되었다고 생각"(같은 책, p.29)했던 그다운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치열한 삶도 삶이려니와 신을 갈망했지만 교회 제도 속에 귀속될 수 없었던 그 정직한 태도가,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살던 제 나태한 의식에 타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냉소하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하고 있던 저항의 전부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시몬 베유는 그야말로 '불꽃의 여자'였습니다. 시몬은 노동 현장에 참여했던 경험이 자기에게 준 충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행과 조우하고서 저의 청춘은 죽었습니다…로마인들이 벌겋게 달군 쇠로 가장 멸시하는 노예의 이마에 낙인을 찍었던 것처럼 저는 그곳에서 영원히 남을 노예의 낙인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늘 제가 노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같은 책, p.44-45)

"저는 불행과의 접촉에서 영혼이 갈가리 찢기듯 혹독한 고통을 느꼈고, 그 때문에 한동안 하느님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을 말하기까지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요. 저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함락의 참상을 예견하시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랩니다. 그리스도께서 연민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같은 책, p.70)

 

이런 순결한 영혼의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마치 맨발로 가시밭 위를 걷는 것같은 예리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언제나 견디기 힘겹지만 온갖 장벽들로 차단된 세상을 깊이 인식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야말로 모든 인간들이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자리일 테니 말입니다. 바벨론에 잡혀가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형편 속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절창 하나를 얻었습니다. '고난받는 종의 노래'로 알려진 노래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사53:3-5)

 

감히 이런 노래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은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고통도 일종의 '두려운 낯섦'(Unheimliche)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기치 않은 시간에 찾아와 우리 일상의 리듬을 뒤흔들어놓습니다. 기왕 고통과 시련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면 제2이사야가 당도했던 그런 인식의 깊이에까지 당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지요. 고통의 어둔 밤 저편에서 희번하게, 암암하게 번져오는 빛을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중심을 바로 잡으며 살다보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옳습니다. 그 하루하루가 중요합니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향을 잃지 않고, 끝없이 자신을 교정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대장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린 시절 홀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때 나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던졌던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네가 견딜 수 있는 마지막 고통인가?' 나의 대답은 늘 '아니다' 였습니다. 오연하고 삭연한 그런 자의식이 삶을 견디는 데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기세가 숙지근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그 때의 기억이 가끔은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나찌의 절멸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탈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둘째는 자살입니다. 수용소에서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죽어서라도 수용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치욕스러운 삶을 견디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겁니다. 셋째는 상상력의 힘에 기대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엄격한 감시자들도 상상력만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상상을 통해 그는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담소하는 자기 가족들 곁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벗들과 어울려 담소하는 자리에 가기도 했습니다. 상상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젠가 치과 의자에 앉아서 치료를 기다리면서 저는 이런 상상여행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독일의 소도시 아이제나허에 있는 바흐의 생가에 와 있다. 뒤뜰이 아름다웠던 그 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건물 2층에는 참 멋진 의자가 있었지. 소라 껍질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의자, 그네처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던, 세상에 그렇게 멋진 의자가 또 있을까. 그 의자에 앉아 듣던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참 장중했지. 장엄한 오르겔 연주를 듣는 순간 왠지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그런 의자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 아무리 곤고해도 그 의자에 앉기만 하면 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이런 상상은 우리 의식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줍니다. 삶은 늘 힘에 부칩니다. 아무리 이해해보려 애써도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습니다. 삶은 어쩌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분에게 이런 말이 부질없음을 잘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입니다. 언제 그림 그리는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그 표현 행위가 내면에 일으키는 변화에 대해서요. 오늘도 꽤 무더울 것 같습니다. 그러라지요. 나는 견디어 낼 겁니다.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