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레미야서 21장: 비주류의 삶

새벽지기1 2021. 10. 22. 07:10

해설:

유다의 마지막 임금인 시드기야는 바스훌(20장 1절에 나오는 바스훌과 동명이인)과 스바냐 제사장(예언자 스바냐와 동명이인)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바빌로니아의 공격에서 유다를 보호해 달라고 중보 해달라고 청합니다(1-2절).

 

예레미야는 중보 기도는 커녕 주님께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통해 유다를 멸망 시킬 것이며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전합니다(3-7절).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전할 말씀도 주십니다. 살아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에게 항복 하라는 것입니다(8-10절). 하지만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이집트에게 도움을 청함으로 인해 유다 백성에게 참담한 재앙을 안겨 줍니다.

 

주님께서는 유다 왕실에게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건져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시야 왕 이후에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의 뜻에 등 돌리고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유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고 그로 인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11-14절).

 

묵상:

예레미야가 백성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빌로니아에 항복 하라는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해 갈 때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내놓고 적과 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권을 잃은 나라에서 목숨을 부지 하느니 조국과 함께 죽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백성을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심판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저항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살고 싶으면 바빌로니아에게 항복 하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당해야 할 모든 재앙을 겪고 난 다음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유다 백성이 그를 혐오하고 배척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하며 그분의 섭리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때로 예레미야처럼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있고 다른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빌린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고후 5:7)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주류의 삶은 고달픕니다. 때로 외롭고 때로 오해 받고 때로 모욕 당하고 때로 혐오를 당합니다. 하지만 믿는 바가 있기에 그 길에서 버티고 견딥니다. 진정한 희망은 그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