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약속을 바라보자[창13:1-18]

새벽지기1 2021. 8. 11. 06:57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10-12) 

 

본문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고 조카 롯과의 헤어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  애굽에서 가나안에 정착한 모습

5-13절 아브람과 롯과의 헤어짐

14-18절 약속을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연약함을 동시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곳에서 다시금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올라왔던 아브람이 이르른 곳은 처음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곳을 떠나 자신의 의지대로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짓으로 위기에 빠졌던 아브람을 구출하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다시금 처음 단을 쌓았던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까? 본문을 보면 아브람이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다시 부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4] 이것은 아브람의 처절한 회개의 자리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현실적인 만족을 위하여 떠났고, 현실적인 위험을 극복하고자 거짓으로 일관하였던 그의 삶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하나님은 원하신 것입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일은 철저한 회개가 없이는 결코 시작할 수도 이루어 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이제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람과 롯의 일행에 대한 기록으로 넘어갑니다. 땅은 한정되고 사람과 육축이 많은 결과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함께 있었으므로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은 제안을 합니다. 서로 나뉘어 살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롯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그리고 롯은 동쪽 땅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가나안에 남습니다.

 

여기사 중요한 사실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람이 어떻게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었는가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욕구로 인하여 자기 아내까지 속인 존재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서 그 주도권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올라온 후의 벧엘에서의 철저한 회개의 결과였음을 봅니다. 회개가 다툼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 온 것입니다.

 

둘째는 롯의 불행한 선택입니다. 롯이 이렇게 선택 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욕심으로 인한 영적 어두움 때문입니다. 그가 선택한 조건은  타당하였습니다. 물이 넉넉하였습니다. 여호와 동산같고, 애굽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갈대와 우르를 떠나고 가나안에 들어와서 첫 단을 쌓을 때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지 못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현실의 만족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12-13절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은 평지 성읍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소돔으로 갔습니다. 소돔은 악한 지역이라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자 이방인의 삶을 따라 욕심은 점점 타락의 길로 간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는 길을 롯은 간 것입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봄이 소망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땅을 선택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사실이지만 이것에 대하여 아브람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아브람은 감사함으로 받아 들인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선택 할 수 있었던 것은 벧엘의 회심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의 중심이 점점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보고 있는 가나안은 롯이 선택한 곳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빈약하지만 약속이 이루어질 때는 영광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고향에서 불러낸 아브람을 이제 자기 유일한 친척인 롯과의 분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아브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히하고 있습니다. 롯과의 분리에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사적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역사는 홀로 아브람을 통하여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브람이 그 약속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이라는 현실에서 다시금 약속을 확인 시켜 줍니다. 14-1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들려주셨던 복의 근원에 대한 약속입니다. 물론 현실은 아직도 척박한 땅 가나안에 있고, 자손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아브람은 다시금 여호와를 위한 단을 쌓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절]

 

본문을 묵상하면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셨고 오늘도 언약을 이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삶이 영광을 누리는 것임을 다시금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현실도 아브람과 같이 척박한 가나안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척박한 현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영적인 무지와 심리적 낙담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