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당신이 그 사람이라

새벽지기1 2020. 10. 24. 06:58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고 백성들을 속이고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아내를 강탈한 후,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다윗은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와 양이 많은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 왔는데, 자기 양을 가지고 대접하는 것이 아까워 암양 한 마리를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이웃에게서 양을 빼앗아 대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대노합니다.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로 사배를 갚아 주어야 하겠다.”

누구에 관한 것인지 다 아는 이야기를 다윗만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여전히 가난한 사람 편에 선 공명정대한 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비리를 비난할 때 우리도 모르게 모두 공명정대한 왕의 자리에 앉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것을 몰라서 시도 때도 없이 사탄에게 놀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사탄에게 놀아나게 방치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단을 보냈고, 성경을 주셨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 나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어서 무서운 질책이 내려졌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단순히 간음을 했다는 점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죄의 경중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고, 내 죄가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정확히 보라는 것입니다. 죄는 행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쁜 생각을 품으면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내 영혼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이 점을 하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인간은 언제나 죄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을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이 듣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단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다윗이 마침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토해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사탄의 종 노릇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해 섰다는 소망의 선언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주된 일은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인지하는 일이다.” 내 죄와 허물을 인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복된 첫 걸음입니다.

어거스틴은 ‘펠릭스 쿨파(felix culpa)’라는 말을 합니다. 영어로 하면 ‘Oh happy sin!’입니다. 내 죄를 인지하고 고백할 때 비로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서서 그 분께 반응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한 다윗에게 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

그 엄청난 죄를 짓고도 죄를 인정하였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용서를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나단이 떠난 후 다윗은 뼈를 깍는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시편 51편은 이 때 다윗의 상한 심령을 토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막연히 아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어떤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고?!” C.S 루이스가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은 대양에 떨어뜨린 한 방울의 잉크만도 못하다.” 죄악이 아무리 크고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은 이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용서의 선언은 그 누구도 번복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폴 포츠는 바쁜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어 먼 한국까지 찾아와서 소년원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고백하면 용서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용서로 끝나지 않고 다윗에게 징계가 내려집니다.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이후 다윗은 평생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과를 치러야 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어도 주 앞에 나오면 그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지은 죄의 열매는 내가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평생 동안 자신의 죄를 인식하며 살면서 다윗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복된 삶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 가운데 살면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내 죄와 허물을 은폐와 책임전가로 얼버무리지 아니하고, 그 동안의 죄를 육체의 가시로 감사히 여기며 인내와 성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는 간절한 다윗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고, 그의 죄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별로 세우셨습니다.

그가 누린 사죄의 은총과 구원의 복을 누리고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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