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약속의 땅을 향한 사명

새벽지기1 2020. 3. 18. 07:17


아무리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그 땅을 떠나지 말고, 그 땅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삶의 길을 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50절 이전의 말씀인 민수기 33장 1~49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에 걸어온 광야 여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남은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인 50~56절에는 광야 40년을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50~51절에는 요단 강 여리고 건너편의 모압 평원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단 강 여리고 건너편의 모압 평원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 일러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여기에는 두 가지 지명이 나옵니다. 첫째는 모압 평원입니다. 모압 평원은 백성들이 현재 있는 곳입니다. 또 하나의 지명은 가나안이라는 곳입니다.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가서 살게 될 땅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너희는 요단 강을 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7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백성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이곳에 머물지 않고 요단 강을 건너 반드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가나안 땅은 천국입니다. 앞으로 죽음의 요단 강을 건너서 반드시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살 동안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서 살게 돼 있습니다. 당신의 가정이 가나안 땅일 수 있고, 당신의 직장이 가나안 땅일 수 있고, 당신이 속한 교회가 가나안 땅일 수 있고, 당신이 일하고 있는 사역지가 가나안 땅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무공해 지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무런 위험도 없고, 고난도 없고 아무런 공격도 없는 그런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7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칼과 창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52~56절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 곧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7족속이 기다릴지라도, 힘들지라도, 어려울지라도, 쉽지 않을지라도 나의 백성이 내가 준 그 땅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  


그러면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두 가지 중요한 개념, 곧 두 가지 중요한 존재방식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52절입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라. 그들이 새겨 만든 우상들을 파괴하고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파괴하며 그들의 모든 산당들을 부수라.” 첫 번째 존재 방식은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구별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섞이지 말고, 동화되지 말고, 혼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단 강을 건너 그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그저 먹고 마시고 땅을 차지하고 어떤 위치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어떤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허락한 곳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있던 족속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과 맞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냥 살려두면 노예로 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유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 아닌 문화를 그냥 유익할 것 같아서 남겨 두지는 않습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혼합주의로 세속화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그런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문화, 사람들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보다 하나님이 더 강합니다.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생도 가나안 땅이라면 내 안에는 쫓아내고 파괴하고 부수어야 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거룩하신 성령이며 내게 임하셔서 내 안에 은연중에 들어와 있는 세상의 헛된 욕심과 욕망과 세상의 방식을 쫓아내고 파괴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 땅에서 떠나지 말라  


두 번째 존재방식은 세상을 끌어안고 그 땅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53절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살도록 하라. 이는 내가 그 땅을 너희가 갖도록 주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그 땅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도록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흘러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당신이 있는 직장과 가문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나지 말되 그 안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가지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54절입니다. “그 땅을 제비를 뽑아 너희 가족별로 나눠 주라. 큰 가족에게는 많이 주고 작은 가족에게는 적게 주라. 각자 제비를 어떻게 뽑든 간에 그 뽑은 대로 땅을 갖게 하라. 이렇게 해서 그 땅을 너희 조상의 지파대로 나누도록 하라.” 하나님은 주신 가나안 땅은 위치가 서로 다르고 땅의 크기도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위치가 다르고 크기가 다릅니다.


이 동일한 동사가 은사를 나눠주시는 고린도전서 12장에도 나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습니다. 직분상 맡은 임무는 여러 가지이나 섬기는 주는 같습니다.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성도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4~7) 여러분,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땅에 자부심을 가지고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존재가치, 즉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할 때 영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대가 있습니다. 뭔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와서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가치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55~56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민수기의 결론이자 신명기의 주제이자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만약 너희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그 남은 사람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바늘이 될 것이다. 그들이 너희가 살게 될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들에게 하리라고 생각했던 대로 너희에게 하게 될 것이다.” 만약 너희가 그렇게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너희 속에 들어와 있는 세상의 문화를 쫓아내지 않으면 그 문화가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시처럼 여겨질지라도 그 가시가 너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고 결국은 그 가시 때문에 너희는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힘들더라도 그 땅을 떠나지 말고, 그 땅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삶의 길을 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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